책소개
마놀레는 아홉 석공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다. 하지만 7년째 공사는 제자리다. 낮 동안 쌓아 놓은 성당 벽이 다음날이면 허물어지는 일이 7년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레츠 보구밀 신부는 완공을 보기 위해선 인신 공희가 필요하다고 마놀레에게 조언한다. 7년간 진척 없는 공사에 지쳐 버린 석공들은 마놀레를 떠나려 하고, 성당 건축을 명했던 총독은 사자를 보내 완공을 촉구한다. 마놀레는 사자에게 사흘의 시간을 요구하고, 석공들에게 인신 공희를 바치겠다는 뜻을 밝힌다. 마놀레와 석공들은 남편이나 동생, 아버지를 위해 먹을 것을 싸 들고 가장 먼저 공사장에 도착하는 순수한 여인을 제물로 삼기로 합의한다. 다음 날, 공사장에 가장 먼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마놀레의 아내 ‘마리’였다. 마놀레는 아내를 성당 벽에 가두고 드디어 성당을 완공한다. 총독과 귀족 관료들이 도착해 아름다운 성당 모습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총독 일행은 마놀레가 다른 제후의 청으로 그보다 아름다운 성당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사 지연을 이유로 마놀레와 석공들을 처형하려 한다. 한편 아내를 제물로 바친 뒤, 성당 벽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듯한 환청에 시달리던 마놀레는 성당 종탑에 올라가 투신한다.
작품의 주요 배경인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Curtea de Argeş) 수도원은 루마니아 중세 왕들의 지하 분묘가 있는 신성한 곳으로, 동방정교회 건축물의 백미를 엿볼 수 있는 루마니아 주요 유적 중 하나다. 마놀레가 떨어진 자리에 생겨났다는 샘터가 있다. 루치안 블라가는 이 작품을 통해 완벽한 건축물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열정과 소중한 아내를 지키려는 남편의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마놀레의 비극적 딜레마를 보여 준다.
200자평
루마니아 아르제슈 수도원에 얽힌 전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루치안 블라가는 철학자, 신학자, 시인이자 극작가로서, 서방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루마니아 작가다.
지은이
철학자, 신학자, 시인이자 극작가인 루치안 블라가(Lucian Blaga, 1895∼1961)는 서방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루마니아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895년 루마니아 세베슈 인근 도시 란크럼(Lancrăm)에서 태어나 1920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바르샤바, 프라하, 빈, 베른, 리스본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30년대 들어 실존주의와 비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아 30여 년 동안 문화 및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루마니아 문화의 정체성과 사상적 기반을 다지고자 노력했다. 1937년 루마니아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9년에는 클루지대학 문화철학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그는 문학인으로서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정부의 감시와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특히 1956년 미르치아 엘리아데, 바질 문테아누, 로사 델 콘테 등 서방세계에서 활동하던 문학인들의 도움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지만, 루마니아 공산 정부는 스웨덴에 특사를 파견하면서까지 이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저지하고자 했다. 블라가가 자신들의 사상적 이데올로기에 반(反)하는 관념론적 문학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블라가는 1961년 사망할 때까지 서정시만 쓰게 되는데, 이마저도 당국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고 말았다.
주요 작품으로 철학서 ≪인식의 3부작≫, ≪문화의 3부작≫, ≪가치의 3부작≫, 시집 ≪가장 슬픈 별≫, ≪루마니아 시골 예찬≫, ≪루치안 블라가 또는 땅과 별들의 노래≫, ≪예언자의 발소리≫, ≪열망의 뜰에서≫, 희곡 <잘목시스, 미스테리한 토속신앙>(1921), <소용돌이치는 물>(1923), <건축 마스터 마놀레>(1927), <아이들의 캠페인>(1930), <아브람 장쿠>(1934), <노아의 방주>(1944) 등이 있다.
옮긴이
임재일은 프랑스 샤를 뒬랭 및 스튜디오 연극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며, 파리8대학에서 공연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밥≫, ≪진동아굿≫, ≪낙하산≫(아르마탕 출판사) 등 국내 희곡을 번역, 출간해 아시아 현대 민중극을 프랑스에 소개한 바 있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Théâtre populaire coréen et Brecht≫(프랑스 PAF 출판사), ≪몰리에르 단막극선≫, ≪화염≫(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부록: 루마니아 중세 민간설화 ‘아르제슈 수도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마놀레: 고독 한가운데에서 성당을 짓기 시작했죠, 그리고 끝없는 소동…. 땅속에 파묻힌 말발굽의 환호성이 제가 세운 성당 위를 밤에 뒤덮쳤죠…. 벽돌이 서로 갈라지는 곳을 파괴하는 그 아찔함. 신부님, 이미 다른 세계를 보는 눈을 가졌는데도 끊임없이 제게 이런 똑같은 조언만을 속삭이시는군요. 희생이라니요! 그렇다면 신부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원하지도 않고 절대로 할 수도 없죠. 이런 암담한 책무라면, 저는 잘 모르겠지만, 차라리 왕궁에서 1년 동안 형리 생활을 하는 게 낫겠네요. 특히 제가 세운 제단 같은 걸 하느님 면전에 들어 올리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만 좀 괴롭히세요, 스타레츠 신부님. 제 두려운 마음은 그 어떤 것도 감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건축 마스터 마놀레≫ 18∼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