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삼아 연애하지 마소 / 문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어야 하오
장난 삼아 연애하지 마소
장인숙이 옮긴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의 ≪ 장난 삼아 연애하지 마소 / 문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어야 하오(On ne badine pas avec l’amour /Il faut qu’une porte soit ouverte ou fermée) ≫
낭만주의의 악동
장난 삼아 하는 연애가 청혼녀를 죽인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남자, 새침하던 여자는 그가 돌아서자 유혹한다.
스물세 살의 악동은 사랑과 질투, 유혹과 실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페르디캉: 하느님, 도와주세요! 날 살인자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이시죠. 우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랍니다. 삶과 죽음을 가지고 놀았어요. 하지만 우리의 가슴은 순수해요. 로제트를 살려 주세요, 정의로운 하느님! 그 아이에게 남편감을 찾아 줄게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려요, 그 아이는 부유하고 행복해질 거예요. 오, 하느님, 그러시면 안 돼요. 이 어린양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아! 카미유, 어떻게 됐니?
(카미유 되돌아온다.)
카미유: 그 아이는 죽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페르디캉 오빠.
≪장난 삼아 연애하지 마소/문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어야 하오≫,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장인숙 옮김, 105∼106쪽
누가 죽었는가?
유모의 딸 로제트다. 커튼 뒤에서 카미유와 페르디캉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를 엿들었다.
죽을 이유가 뭔가?
페르디캉이 로제트에게 청혼한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페르디캉의 배신인가?
그는 처음부터 카미유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거절하자 유모의 딸 로제트에게 청혼한 것이다. 로제트는 페르디캉의 진심을 믿었다가 결국 그에게 배신당했다.
카미유는 처음에 왜 거절했는가?
그녀는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곳 수녀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점차 남자를 불신하게 되었다.
수녀원의 결심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페르디캉이 로제트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보자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자신이 페르디캉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예배당에서 카미유의 기도를 엿들은 페르디캉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로제트는 두 사람의 사랑의 희생물인가?
그렇다. 카미유는 로제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둘의 행복도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페르디캉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것으로 극이 끝난다. 제목인 ‘장난 삼아 연애하지 마소’라는 속담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
속담에서 극의 주제를 끌어온 것인가?
18세기 후반 살롱에서는 속담을 즉흥극 소재로 즐겨 사용했다. 뮈세는 이러한 연극 전통을 자신의 문학에 적용했다. 그의 속담 소희극은 잘 알려진 속담 또는 격언을 골라 제목으로 삼고 그 의미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수법을 보여 준다.
함께 엮은 다른 희곡, <문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어야 하오>도 속담에서 가져왔나?
역시 ‘문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격언을 제재로 삼았다. 30대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2인극으로 이들은 밀고 당기는 사랑의 심리전을 보여 준다.
18세기 프랑스의 ‘밀당’은 어떤 것인가?
백작과 후작부인은 이웃이다. 예전부터 후작부인을 흠모해 온 백작은 문이 열려 있었다는 핑계로 그녀를 방문한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냉소적이고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실망한 백작이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그녀는 태도를 바꿔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애교 전술을 편다.
뮈세의 주인공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두 작품 모두 청춘 남녀가 주인공이다. 뮈세 작품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뮈세는 청춘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분과 환희, 권태와 환멸, 오만과 혐오를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왜 청춘 남녀였는가?
뮈세가 자신의 초상을 인물들에게 투영하고자 한 의도로 풀이된다.
작가의 경험이란 뜻인가?
그렇다. <장난 삼아 연애하지 마소>는 그가 연인 조르주 상드와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겪은 사랑의 복잡하고 내밀한 관계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상드와 뮈세 사이에 베네치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여행 중에 뮈세가 병을 앓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오던 의사와 상드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이 일로 상드와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던 뮈세는 결국 홀로 베네치아를 떠나면서 그녀와 관계를 청산했다. 파리로 돌아온 뮈세는 창작에 온 힘을 기울여 주옥같은 작품을 썼다.
그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
이때가 그의 전성기다.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작가로서 문학에 갓 입문한 뒤 쓰디쓴 실연의 아픔을 겪으며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는 통과제의를 경험한 것이다. 뮈세는 ‘낭만주의의 악동’이라 불리며 이른 나이에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전성기는 언제까지 계속되나?
1838년 28세에 이르러 그의 문학적 성취는 하락세를 보인다. 1850년 <카르모신>을 끝으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한다. 과도한 음주로 정신과 육체를 소진하다 1857년 심장 발작으로 눈을 감는다. 그때 나이 겨우 47세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인숙이다. 수원과학대학교 공연연기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