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현 동화선집
해방 후 60년대까지 한국동화 특선, 조대현의 <종이꽃>
엄마가 제일 좋아하실 물건이 뭘까?
옳지. 고무신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만 오면 신이 새어 흙탕 발 신세를 면치 못하는 엄마에게 고무신 한 켤레를 사 드리면 아마 너무 좋아서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지실 것입니다. 정이는 종이꽃을 만듭니다. 100개를 만들어 팔면 엄마 생일 선물을 살 수 있습니다. 조대현이 동화를 쓸 때 대한민국은 가장 어려운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의 동화가 판타지일 수 없고 앙가주망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빠앙….”
철다리 위로 밤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정이는 또록또록 밤을 밝히고 앉아 종이꽃을 만듭니다. 빨강, 파랑, 노랑…, 색색으로 물들인 종잇조각을 붙여서 만드는 종이꽃입니다.
꽃잎을 한 잎 두 잎 붙여 갈 적마다 정이의 손끝에서는 탐스러운 꽃송이가 피어납니다. 개나리, 진달래, 봉숭아, 카네이션….
정이가 종이꽃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벌써 한 주일째입니다. 생일을 맞는 엄마에게 무슨 조그만 선물이라도 사 드리려고 시작한 것이, 그동안 공부하랴 집안일 거들랴 바쁘다 보니 그만 턱없이 늦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꼭 꽃가게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내일까지 종이꽃 100개를 만들어다 주기로 꽃가게 주인과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정이는 수고한 값으로 돈을 받게 됩니다. 이 일은 정이뿐 아니라 부근의 아주머니들이 용돈 벌이 삼아 많이들 가져다 하는 일입니다.
정이는 그 돈을 받아서 무엇을 살까 망설여 봅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실 물건이 뭘까?’
문득 학교 앞 인형가게의 노랑머리 인형이 떠오릅니다. 눈도 눈썹도 노란, 그 앞을 지날 적마다 꼭 한번 안아 보고 싶다고 탐을 낸 서양 여자 인형입니다.
하지만 그건 엄마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값도 비쌀 테고.
그럼 무얼 살까? 옳지. 고무신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만 오면 신이 새어 흙탕 발 신세를 면치 못하는 엄마에게 고무신 한 켤레를 사 드리면 아마 너무 좋아서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지실 것입니다.
아니야. 어쩌면 엄마에게 더 급히 필요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한 번 여쭈어 보고 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엄마는 정이의 이런 생각을 까마득히 모르고 계십니다. 종이꽃 만드는 것도 그냥 학교 숙제라고 말씀드렸으니까요. 만일 바른대로 말했다가는 당장 그만두라고 야단치실 게 뻔합니다.
“빠앙….”
어느새 새벽 2시 반 차가 지나갑니다.
이제부터 30분마다 한 대씩 남쪽으로 가는 기차가 철다리 위를 지나갑니다. 그러면 세 번째 기적 소리에 엄마는 또 고단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차를 타러 역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엄마는 새벽 4시 반 차를 타고 남쪽 지방, 대구나 영주, 어떤 때는 부산까지 가서 물건을 해 오시는 것입니다.
엄마가 자루나 보따리에 사 오는 물건은 쌀·보리·콩 같은 곡식을 비롯해서, 여름에는 오이·마늘 같은 채소, 가을이면 사과·배·감 같은 과일 등입니다. 엄마는 그런 물건들을 싼값에 사다가 소매상에 넘기거나 시장 귀퉁이에 앉아 팔고, 거기서 남는 돈으로 정이와 단 두 식구의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정이는 그렇게 애쓰시는 엄마를 생각할 적마다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합니다.
저녁때, 또는 밤이 깊어서야 무거운 짐 보따리를 이고 들고 돌아오시는 엄마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허리는 휘고 머리는 헝클어져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처량합니다. 그래도 이튿날 새벽 4시가 되면 마치 시계처럼 잠이 깨어 군소리 한마디 없이 나가시는 엄마. 그런 엄마를 생각할수록 남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어서 커서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남몰래 다짐하는 정이이기도 합니다.
“빠앙….”
벌써 3시 차입니다. 이제 한 시간 반 정도 지나면 엄마가 또 떠나십니다. 정이 손의 종이꽃도 어느새 100개를 거의 다 채워 갑니다. 이제 아흔세 개니까 앞으로 일곱 개만 더 만들면 됩니다.
정이는 자리를 고쳐 앉아 더욱 부지런히 마지막 몇 개 남은 꽃을 공들여 만듭니다. 꽃잎을 붙이고 꽃술을 넣고 꽃받침을 붙여서 줄기를 달고…. 이제 100개째의 꽃송이가 정이 손에서 활짝 피어납니다.
“아아, 됐다!”
정이는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켜 봅니다. 눈앞에 별이 뚝뚝 떨어지고, 오그렸던 무릎은 저려서 얼얼하고 잘 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선물할 기쁨을 생각하면 그까짓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이는 어질러진 방바닥을 대강 치우고 살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은하수가 어느덧 서쪽 하늘로 훨씬 기울고, 저편 시장 쪽 하늘에는 날이 샐 때 끼는 새벽안개가 가로등 불빛 위에 자욱하게 내립니다. 이제부터 몇 시간이라도 자야 합니다.
정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엄마 옆 자리로 살그머니 파고들었습니다. 엄마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에 조심을 했지만, 어느새 엄마는 정이의 인기척을 알아채고 잠결에도 포근하게 정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십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드신 엄마는 깜짝 놀라 일어나며,
“아니, 너 여태 안 잤니? 아유, 얘가 시간이 몇 시라고. 몇 시 차 지나갔니?”
사뭇 늦잠을 주무신 줄 알고 수선을 피우셨습니다.
“아까 3시 차 지나갔어.”
정이의 대답에 엄마는 겨우 안심이 된 듯, 다시 자리에 누우면서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정이를 나무라셨습니다.
“그러다가 병나면 어쩌려고 그러니? 원, 공부도 중하지만 잘 땐 푹 자야 하는 게야.”
정이는 대답 대신 엄마의 품속으로 바싹 파고들며 자랑하듯 엄마 귀에 속삭였습니다.
“엄마, 나 내일 엄마한테 선물할 거야.”
그러나 엄마는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응, 응” 잠꼬대 비슷한 소리만 하십니다.
정이는 좀 더 큰 소리로 엄마 귀에 바짝 대고 응석부리듯 말했습니다.
“내일 엄마 생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선물한다고!”
그제야 알아들으신 엄마는 대견한 듯 정이 머리에 볼을 비비시며,
“생일이면 뭐 대수냐? 아무 소리 말고 어서 잠이나 자요.”
그러면서 어느새 코를 쿨쿨 고시며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아이 참, 무슨 선물이 좋은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정이는 은근히 화가 났지만 엄마가 고단하시니까 그러는 거라 생각하며 더 묻지 않고,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대로 콜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날이 밝아 정이가 잠이 깨었을 때는, 엄마는 이미 집을 나가 버린 뒤였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정이가 잠 깨지 않도록 자리에서 살며시 빠져나가 아침밥까지 지어 이불 밑에 묻어 놓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정이는 급히 일어나 밥을 먹고 엊저녁에 만들어 놓은 종이꽃 100개를 차곡차곡 상자에 담아 책가방과 함께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공부 마치고 바로 꽃가게에 들러서 엄마 드릴 선물까지 사 가지고 올 작정입니다.
학교에서도 정이는 선물 살 생각에 선생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어서 시간 가기만 기다렸습니다.
도덕 시간엔가, 선생님께서 “사람은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만은 용케 귀담아듣고, “그럼요. 전 그래서 엄마에게 고무신을 사 드릴 거예요” 하고, 속으로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윽고 공부가 끝나자 정이는 부리나케 철길 건너 시장으로 갔습니다. 네거리에서 세 번째 골목을 두 번 꺾어 들어가면 ‘무궁화 수예점’이란 꽃가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게 앞까지 온 정이는 어리둥절하여 멍하니 간판만 쳐다봅니다. 쉬는 날도 아닌데 꽃가게가 문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웬일일까?’
정이는 망설이다가 거기 ‘1, 2, 3, 4, 5’라고 숫자가 쓰인 문짝을 쿵쿵 두드려 보았습니다. 안에서 문고리 따는 소리와 함께, 어떤 낯선 아저씨가 쪽문으로 고개만 불쑥 내밀고 왜 그러느냐는 듯 뻔히 바라보았습니다.
“저, 꽃 만들어 왔는데요.”
정이가 꽃 상자를 보이며 하는 말에 아저씨는 퉁명스레
“여기 이젠 꽃가게 안 한다. 꽃집은 딴 데로 이사 갔으니 그냥 가져가거라.”
하고, 미처 다른 말을 물어볼 사이도 없이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정이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섰는데, 마침 그 옆 옷가게에서 내다보던 주인아주머니가
“너도 꽃 만들어 왔구나. 이젠 소용없는걸. 그 집 장사하다 망해서 멀리 도망가 버렸단다.”
하고 친절히 일러 주었습니다.
순간 정이는 두 다리의 힘이 쭉 빠졌습니다. 밤새워 만든 보람이 아무 쓸모도 없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엄마에게 선물 사 드리기가 아예 틀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고 서 있어 봐야 소용없다. 벌써 나흘 전에 떠났는데 지금 가져오면 어떡하니.”
옷가게 아주머니의 말을 뒤로 들으며 정이는 쓸쓸히 시장 골목을 나왔습니다. 눈앞에 노랑머리 인형이며 고무신, 그리고 엄마의 얼굴이 번갈아 지나갑니다. 마치 축 처진 정이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이는 맥없이 네거리를 지나 철다리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난간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다리 아래로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습니다. 고여 있는 듯 천천히 흐르는 물 위에 제 얼굴이 비쳐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이는 한 번도 제 얼굴이 저렇듯 보기 싫게 일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
정이는 진저리를 치면서, 들고 있던 상자에서 꽃 한 송이를 꺼내 다리 아래로 뚝 떨궜습니다.
그러자 종이꽃은 팔랑팔랑 춤을 추면서 물 위로 떨어져 정이 얼굴 모습을 지우고 아래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꽃이 흘러가 버리자 물 위에는 다시 얼굴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정이는 다시 꽃 한 송이를 꺼내 먼저처럼 다리 아래로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꽃은 그대로 떠내려가 버리고, 그 자리에 여전히 보기 싫은 얼굴이 버티기라도 하듯 뻔히 정이를 쳐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정이는 화가 나서 이번에는 세 송이, 네 송이씩 닥치는 대로 꽃을 집어 던졌습니다.
종이꽃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내려가 넓은 강 위를 꽃방석처럼 수놓으면서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갔습니다. 마치 호수 위에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정이는 그것이 좋아서 자꾸자꾸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텅 빈 상자 안에 단 한 송이, 불그스레한 카네이션 한 송이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왠지 분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울컥 치밀어, 정이는 남은 그 한 송이 꽃을 가지고 쫓기듯이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집에 온 정이는 벽에 개 얹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나지 않게 혼자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철다리 위를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린 정이는 퉁퉁 부은 눈으로 부엌에 나가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언제나 이맘때면 정이는 밥을 지어 놓고 정거장으로 엄마 마중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가 일찍 돌아오셨습니다. 정이가 마중을 나가기도 전에 돌아오셨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인지 기분도 아주 좋으신 얼굴입니다.
“글쎄 오늘은 일이 잘되느라고 역에 내리자마자 이내 물건이 다 팔리지 뭐냐. 어유, 덕분에 오늘은 초저녁부터 두 다리 쭉 뻗고 실컷 자게 됐지 뭐냐.”
엄마는 그러면서 들고 온 조그만 종이 꾸러미를 푸셨습니다.
“어미 생일이라고 뭐 한턱낼 게 있어야지. 그래서 내 모처럼 돼지고기 한 근 사 왔다. 우리 맛있게 찌개나 끓여서 저녁이나 먹자꾸나.”
그러나 정이는 싱글벙글하는 엄마 앞에서 얼굴을 마주 들지 못했습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가 숙여져 말없이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정이가 이상한지 정색을 하고 물으셨습니다.
“왜? 학교에서 무슨 꾸중 들었니?”
“….”
정이는 살래살래 고개만 저었습니다.
“그럼 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엄마에게 정이는 더 숨길 수가 없어서 와락 엄마 품으로 뛰어들며 어리광 부리듯 말했습니다.
“엄마, 미안해.”
그러면서 단 한 송이 남은 종이꽃을 던지듯이 엄마 저고리 깃에 달아 드렸습니다.
“에구, 원 애두! 난 또 뭐라구. 어미한테 미안하긴. 괜찮아요. 이런 것 없어도 엄만 정이 맘 다 알아요. 그저 이렇게 탈 없이 자라 주는 것만 해도 엄만 감사하고, 하늘을 날 것처럼 기운이 난단다.”
엄마는 흡족한 듯 씽긋 웃으면서 또 한 번 정이의 머리를 꼭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정이는 그만 맺혔던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빠앙….”
밤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또 한 차례 철다리를 울렸습니다.
<종이꽃> 전문, ≪조대현 동화선집≫, 조대현 지음, 최정원 해설, 1~13쪽
*생존 작가는 직접 대표작을 고르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평론가의 정통한 해설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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