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포비아
강신규, 나보라, 박근서, 박상우, 윤태진, 이동연, 이설희, 조은하, 주재원, 허준석의 <<게임포비아>>
게임 공포의 조종자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른다. 바보가 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게임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게임이 순한 양을 늑대로 만들 것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 바보가 되지 않았을까?
게임포비아란 무엇인가?
게임에 대한 공포 혹은 두려움을 말한다.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은 개인의 심리적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작용의 결과다. 게임포비아는 개인 주체와 게임을 작용점으로 삼아 문화적 지배를 위한 힘의 재배치를 이룬다.
게임에 대한 보수 권력의 책략은 무엇인가?
21세기 보수 권력은 일상의 위험을 파는 공포와 협박의 정치, 흔히 말하는 공갈의 정치를 수립한다. 지난 정부의 게임 쿨링오프제나 셧다운제가 단적인 사례다. 청소년이라는 취약한 지점을 매개로 문화적 공포를 생산하고 유포함으로써 일상적 삶에서 유순함을 일궈낸다.
공포와 협박의 대상은 누구인가?
표면적인 타깃은 청소년이지만, 학부모로 대표되는 사회구성원 일반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다. 청소년의 문화적 일탈과 학습에서의 이탈을 두려워하는 어른들이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길들인다는 것은 또한 자신을 길들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청소년을 향한 권력은 결국 어른들에게 재귀된다.
학부모 담론에서 게임은 어떻게 표상되나?
청소년의 건강과 정서에 위해하다는 데 일차 초점이 맞춰져 있다. 늦은 밤까지 게임하느라 잠을 설치니 건강에 좋지 않다거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가 여린 감수성에 외상을 남길 것이라는 식의 논리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게임의 주된 측면이 아닐뿐더러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드러나는 것이지만, 학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게임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기도 한 청소년 자녀들이 공부보다 게임을 좋아하니 걱정이라는 말이다. 부모들 대부분은 자녀들이 하는 게임의 구체적인 면면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 시간만을 통제하려 한다. 이 부분에서 문제와 쟁점이 발생한다.
게임포비아 담론이 헤게모니 투쟁인 까닭은?
실제로 게임 담론을 통해 권력이 행사되기 때문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게임에 대한 공포는 곧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두려움이고, 기존 질서로부터의 일탈과 새로운 가능성의 추구에 대한 보수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뉴미디어로서 게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담론은 보수적 문화정치의 책략과 밀접하게 결부된다.
올드미디어는 게임포비아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가?
뉴미디어포비아를 유포한다. 보수적인 미디어 권력은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접근과 수용을 가로막기 위해 자기 검열과 통제의 기제로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그 배경에는 시장을 두고 벌이는 자본의 싸움이 있다. 아울러 의미의 문제, 가능성의 문제, 미디어가 지닌 구조와 논리의 문제도 개입한다. 게임포비아는 뉴미디어포비아의 최신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전엔 뉴미디어포비아가 없었나?
아니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도 처음 등장했을 땐 포비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주된 초점이 외설성과 오락성이었다면, 게임에서는 폭력성과 중독성이 핵심 축이다.
비디오와 게임, 오락과 폭력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흔히 텔레비전은 ‘본다’로, 게임은 ‘한다’로 수식된다. 수용자가 게임을 수용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발생하는 맥락이다. 텔레비전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안락의자에 틀어박힌 삶은 감자라고 한다면, 게임의 영향은 늘 콜롬바인고등학교 사건처럼 끔찍한 행위들과 연관된다.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다만 그들의 몸과 영혼만을 갉아 먹지만, 게임 중독자들은 자칫 우리에게 칼과 총을 들이댈 도살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그래서 발생한다.
윤리적 비난과 의학적 위협의 차이인가?
그렇다. 텔레비전포비아와 게임포비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보가 될 것이다’라는 수준의 경고가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라는 수준의 위협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 얼간이가 될 거라는 경고가 문화적 수준에 있는 것이었다면, 게임에 대한 위협은 의학적 담론을 끌어들여 상당히 과학화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위협의 강도와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지금의 상황을 진단하는 게 먼저다. 게임을 작용점 혹은 대상으로 하는 권력의 작용과 그 효과에 대한 감시와 분석, 그리고 이에 대한 보고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아울러 게임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이끌어 낼 방법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무엇이 당신에게 이 책을 쓰게 만들었나?
이명박 정부 말기의 게임문화 상황은 정말 암울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담론적 계기 혹은 디딤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바탕한다.
게임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민인가?
그 문제에 들이대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독자다. 게임을 산업적 논리와 규범적이고 정신위생적인 담론으로부터 탈구시켜 그것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좀 더 넓게 보면 게임에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매달리는 사람들, 현실 긍정의 에너지를 게임을 통해 발현하려는 게임학도들과 업계 종사자들, 그리고 동시대의 다양한 문화적 양상에 관심을 지닌 교양 있는 독자들도 포함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근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텔레비전 오락을 연구해 왔고, 최근에는 게임을 집중 연구한다.
연구집단 로그아웃은 어떤 단체인가?
게임문화연구회라는 인터넷 연구모임에 참여하던 일군의 연구자, 새로운 시각으로 게임에 접근하려는 일부 문화연구자들이 모였다. 처음엔 게임문화연구포럼처럼 막연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 이 책을 구상하게 되면서 로그아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박상우와 조은하의 제안이었다. 게임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는 것은 게임에서 로그아웃할 때부터니까.
<<게임포비아>>
게임포비아 담론의 핵심 기제는 뭔가? 불안과 공포 조성이다. 기존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하나? 설명, 협박, 설득의 형태로 게임포비아를 전파한다. 누가 타깃이고, 어떤 효과를 낳나? 청소년과 학부모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로 확산되며 문화정치적 지형을 보수화한다. 연구자 10명이 게임포비아 담론의 발생, 유포, 재생산 원리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게임 담론에 숨겨진 권력의 전략을 낱낱이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