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조 동화선집 초판본
박혜숙이 엮은 ≪이구조 동화선집≫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천진하고 난만하며 어른의 아버지다. 개구리를 돌로 쳐 죽이고 메뚜기 다리를 하나씩 뜯어낸다. 약한 자를 놀려 먹고 한없이 순결하다. 이구조가 보는 어린이는 선과 악을 다 가진 다양한 감정의 복합체다. 그가 사실동화를 쓴 이유다.
“영감님 아드님이−수복이 말씀입니다, 이번 달치 수업료를 안 가저와서, 그래서….”
“그럴 리가 있소?”
“그럴 리는 없겠는데, 수복이는 여태 영감께서 안 주셨다고 그리던데요. 그리구 딴소리만 하굽쇼.”
“허−”
하고 수복이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수염을 내려 쓰시고 나서,
“수복아!”
마치 범처럼 눈을 크게 부르뜨고 수복이를 불렀읍니다.
수복이는 어머니나 형님이나 선생님쯤은 그닥 무서워하는 길이 없었으나, 아버지만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했읍니다. 수복이는 아버지의 호령이 한마디 떨어지자 몸을 푸르르 떨었읍니다. 없는 말 있는 소리를 다해 가며 선생님 앞에서 내뻐치던 수복이도 아버지 앞에서는 딴판이였읍니다.
“월사금 준 것으루 무엇했어? 말해 봐!”
“….”
“냉큼 말 못 해?”
“과자 사 먹었어요.”
“저 녀석! 집에 과자가 포 한 통만 되나. 밤낮 먹으면서 월사금으로 또 처먹어? 허, 과자벌레란 말야.”
태호 아버지도 태호더러 월사금 준 것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어보았읍니다.
태호는 아버지가 박한 월급자리를 살아서 집안 살림을 겨우겨우 해 나가시는데, 저는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아버지가 가여운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읍니다. 그래 목메인 소리로 대강대강 말씀을 드렸읍니다.
황수복이가 처음에는 딱총을 줍네 사탕을 갖다 줍네 하며 꾀이던 이야기. 그리다가 태호가 수업료 가저오는 것을 보고 사탕집으로 끌고 가서 한턱내라던 이야기. 싫다고 하니까 필경 육박질러서 하는 수 없이 월사금 주머니에서 끄내 준 이야기. 그리고 기한 안에 꼭 갚아 놓는다고 말만 해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략)
一학년서부터 六학년까지 태호와 수복이와의 이야기를 모르는 학생이 없으리만큼 퍼졌읍니다. 그와 동시에 수복이에게 ‘과자벌레’라는 새 별명이 생기였읍니다. 황수복이라는 본명을 모르는 학생은 있어도 ‘과자벌레’라는 별명을 모르는 학생은 드물었읍니다.
“과자버얼레.”
“과아자벌레.”
“과자벌레에.”
<과자벌레>, ≪이구조 동화선집≫, 이구조 지음, 박혜숙 엮음, 85∼87쪽
표기는 초판본(≪까치집≫, 예문관, 1940)을 따랐습니다.
이구조는 누구인가?
1911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193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시와 동요, 동극, 창작동화, 소년소설 등의 작품을 창작했다. 이론에도 힘을 쏟아 1940년 ≪동아일보≫에 <동화의 기초 공사>, <아동 시조의 제창>, <사실동화와 교육동화>를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아동문학평론가의 입지도 굳혔다. 1940년 12월 예문관에서 21편의 작품과 작가의 후기가 수록된 유일한 동화집 ≪까치집≫이 발간되었다. 1942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하숙에서 요절했다.
동화집 한 권뿐인 작가가 한국 동화문학작가 100인에 꼽힌 이유는?
‘사실동화’ 때문이다.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 자신의 이론에 따라 작품을 창작했다.
사실동화가 무엇인가?
‘사실 또는 현실’을 ‘동화’에 담아낸 것이다. 동화와 소년소설을 아우르는 양식인 셈이다. 당시에는 초현실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공상적 이야기는 동화로, 현실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소년소설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구조는 사실적 기법을 사용해서 아이들의 현실 생활을 그리되, 동화가 가진 환상성, 초자연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구조가 동화와 소년소설, 이 두 장르를 혼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문단을 지배하던 아동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아동관을 정립하고자 했다. 아동문학 역시 문학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의 아동관이란 방정환의 관점인가?
방정환의 동심천사주의적 아동관과 카프의 현실적인 아동관 모두를 말한다. 1920년대 방정환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아동문학은 문학운동과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만큼 계몽성이나 교육성이라는 목적의식과 무관할 수 없었다. 때문에 1920년대 후반 이후 경향문학가들에게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경향문학의 아동관은 어떤 내용인가?
경향문학 역시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적의식과 무관할 수 없었다. 경향문학가들은 동심보다는 현실 속의 어린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회나 현실을 고발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동심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작품은 동화보다는 소년소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다가 1935년 카프가 해산되는 것을 기점으로 경향문학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아동문학의 새로운 양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구조의 아동문학관은 사실동화를 만들어 내는 데 어떻게 작용했나?
문학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그가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암울한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작품을 창작하고자 했다. 그랬기에 “현실의 인생에 직면”할 수 있는 소년소설 장르와 “희망의 광영을 지속시켜 독자인 어린이에게 자극을” 주는 동화 장르를 혼합할 수밖에 없었다.
동심천사주의나 소년소설과 어떻게 다른가?
그는 “天眞하고 爛漫하며 ‘어른의 아버지’오, 地上의 天使만도 아닌 同時에, 개고리 배를 돌로 끈는 것도 어린이오, 물딱총으로 동무의 얼굴을 쏘는 것도 어린이오, 메뚜기의 다리를 하나하나 뜯는 것도 어린이오, 미친 사람을 놀려 먹는 것도 어린이”라고 했다.
아동을 선뿐만 아니라 악의 관점에서도 보았는가?
선과 악의 측면을 다 가진 다양한 감정의 복합 존재다. 다양한 욕망을 가진 주체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존재이고 반성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해 가는 존재이며 놀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줄 아는 지혜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어린이와 어른의 구별이 의미 있는 것인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의 부속물이 아니다. 어른들이 머릿속으로 그려 내는 관념의 대상도 아니다. 주체적인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의 작품 속 아이들은 자신의 다양한 욕망을 드러내며 그 욕망에 충실하다.
작품에서 아이들의 욕망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산울림>의 조지가 친구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면, <조행 ‘갑’>의 덕재는 친구를 이기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알사탕과 설탕>과 <과자벌레>는 아이들의 식탐을 다룬 작품이다. <알사탕과 설탕>이 단것에 대한 옥이의 고집스러운 식탐을 그리고 있다면, <과자벌레>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욕망에 탐닉하는 황수복을 통해 욕망의 집요함을 드러낸다. <새 새끼>에는 새 새끼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소유욕이 잘 드러나며, <방패연>에는 아이들의 뻐기고 싶어 하는 욕망, 지기 싫은 욕망이 잘 드러난다.
‘나쁜 아이’의 등장도 가능한가?
‘나쁜 아이’라는 표현에 이미 어른들의 시선, 어른들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이구조의 작품에는 ‘나쁜 아이’라기보다는 욕망에 굴복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살아 있는 현실의 아이들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계몽해야 하는 대상이나 특정 이데올로기를 보여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욕망을 가진 주체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적극적으로 욕망을 실현하는 아이, 욕망에 탐닉해 전락하는 아이, 욕망을 조율해 자신의 신념을 지켜 가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이구조는 아이들에게 자기 삶을 조율하는 법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구조의 동화 이론은 어떤 것이었나?
1940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동화의 기초 공사>에서는 아동의 단계를 메르헨 시기(7∼9세), 순수 수용 시기(남 10∼13세, 여 10∼12세), 과도적 반사 시기(남 14∼17세, 여 12∼15세) 셋으로 나누고 거기에 걸맞은 동화를 제시한다. <아동 시조의 제창>에서는 4·4조, 4·3조, 3·3·4조 등 우리 민족 고유의 리듬을 살린 아동시조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을 제창하기도 했다.
그의 동화집 ≪까치집≫은 어떤 내용의 책인가?
총 21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가는 아동의 발달 단계에 따라 자신의 작품을 동화와 소년소설로 구분해 놓았다. 전래동화를 개작한 <꾀쟁이 토끼>를 포함한 18편이 동화이며, <새집>, <차돌이>, <오누이> 3편이 소년소설이다. 이 책에 그의 사실동화 16편을 실었다.
문단은 이구조의 사실동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짧은 활동 기간 때문에 문단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잊히고 말았다. 미학 완성도 면에서 부족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동의 모습을 현실 그대로 채취한 ‘단편 스케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본격 아동 단편소설과 생활동화의 선구 작업이라는 큰 의의를 가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사실동화는 뒤에 현덕의 완성도 높은 생활동화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구조의 사실동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활동화와 다른 문학인가?
그가 활동했던 1940년대 당시에는 생활동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 창작되기 시작한 현덕의 작품이 후대에 이르러서야 ‘생활동화’라는 이름을 얻는다. 박병준은 사실동화와 생활동화를 구분하면서, “생활동화는 동화의 환상성이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그 위에 현실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 설명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혜숙이다. 동화를 창작하며 아동문학 평론을 한다. 1999년 ≪아동문예≫에 동화 <나무의 전설>로 등단했고 2010년 봄 계간 ≪아동문학평론≫에 <시적 판타지가 구현해 낸 개벽 세상>으로 평론 부문에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