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철학
서정혁이 옮긴 게오르크 헤겔(Georg W. F. Hegel)의 ≪세계사의 철학(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
자유를 향한 헤겔의 투쟁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 이성이 찾아가는 것은 자유, 자유가 요구하는 것은 인간 주체 의식과 목적의식, 그리고 부단한 노력과 투쟁이다.
사람들은 우선 철학이 사상을 가지고 역사에 접근하면서 역사를 사상에 따라 고찰한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철학이 동반하는 유일한 사상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며 세계사도 이성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이성에 대한 단순한 사상이다.
≪세계사의 철학≫, 게오르크 헤겔 지음, 서정혁 옮김, 34쪽.
역사는 사실인데 이것에 철학이 가능한가?
전통적으로 역사는 우연히 발생한 사실의 단순 기록이었다. 그래서 철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자 역사 주체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퍼졌다. 인간의 문제이므로 인간사와 그것의 진행 법칙을 탐구하는 역사철학이 학문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사의 철학≫은 어디에서, 무엇을 옮겼는가?
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에서 펴낸 ≪헤겔 전집≫ 제18권 ≪강의 원고들 II≫의 <1822∼1828년 들어가는 말>과 <1830∼1831년 들어가는 말>을 옮겼다. ‘세계사의 철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강의 원고에는 <들어가는 말>뿐인가?
헤겔이 직접 쓴 역사철학 강의 원고는 그것밖에 없다. 강의 내용은 수강생의 필기 노트에 남아 있다. 펠릭스 마이너 출판사는 헤겔의 강의 원고를 ≪헤겔 전집≫으로, 수강생의 필기 노트를 ≪헤겔 강의 선집≫으로 나누어 내놓았다.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역사를 기술하는 세 가지 방식을 설명한다. 근원적 역사, 반성적 역사, 철학적 역사다. 특히 그의 구상을 가장 폭넓게 담은 <1830∼1831년 들어가는 말>에서 정신과 그것이 실현되는 수단과 재료, 세계사의 발전 원리와 진행 단계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근원적 역사와 반성적 역사는 어떻게 나뉘나?
근원적 역사는 역사가가 직접 체험하거나 보고 들은 것을 소박하게 기록한 것이다.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가 대표적이다. 반성적 역사는 역사가가 특정 주제에 따라 과거의 사태와 행위를 자신의 정신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로마사≫를 쓴 리비우스를 예로 들었다.
철학적 역사는 무엇인가?
근원적 역사의 보편성과 반성적 역사의 특수성의 변증법적 종합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계사가 이성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세계사는 완전한 상태를 향해 발전하고 인간에게는 “완전성을 향한 추동력”이 있다고 본다.
완전한 상태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자유를 세계사의 궁극목적으로, 세계사를 자유 의식의 진보 과정으로 보았다. 자유를 “인간에게 존재하는 신적인 것”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자유를 구현한 국가를 세계사에서 찾을 수 있는가?
자유는 동양, 그리스 로마, 기독교 게르만 세계의 단계로 높아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동양 세계에서는 군주 한 사람만이 자유롭고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소수의 사람만이 자유로우며 기독교 게르만 세계에서는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롭다고 보았다.
헤겔은 자기 사회와 문화가 가장 우수하다는 자만심에 빠진 것이 아닌가?
헤겔의 자만심은 유럽 근대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의 눈앞에는 종교개혁, 계몽주의,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 근대가 있었다.
유럽 근대가 헤겔의 이상향이었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확립하고, 이성 국가를 건설하는 과제를 완벽하게 실현했다고 생각했다.
목적론적 세계관이라는 비판을 반박할 수 있는가?
그의 역사 철학을 단순한 숙명론이나 낙관론적 세계관과 혼동하기 때문에 제기되는 비판이다.
헤겔의 역사관이 목적론이 아니라는 반증을 제시할 수 있는가?
냉철한 현실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주체적 인간이 역사에서 실현해야 할 자유라는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투쟁을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카를 포퍼는 헤겔 역사철학을 유토피아주의라고 비판한다. 동의하는가?
헤겔의 역사철학이 전체론의 관점에서 고정 불변의 역사 발전 법칙을 전제하고 역사가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적을 전제하는 유토피아주의라고 비판한 것을 알고 있다. 세계사에 출현한 개인의 활동과 성과물을 세계정신이 자기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와 수단으로 보는 진보 사관이나,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이 세계정신의 구현자로서 역사를 주도해 왔다는 시각도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헤겔의 역사 의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개인의 행위를 의미 있는 역사로 승화하기 위해 지나간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에 기억된다는 조건에서만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사로서의 현재’에 참여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서정혁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리더십교양교육원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