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렌 시선
윤세홍이 옮긴 폴 베를렌(Paul M. Verlaine)의 ≪베를렌 시선(Poésie de P. M. Verlaine)≫
감각 또는 소리 그 자체
말은 감성이나 지성을 위해 일한다. 감각을 위해 일하는 말은 없다. 형이상학? 상징주의? 시를 만나려면 차라리 소리가 낫다. 순수하고 멍청하며 고집부리지 않고 재빨리 사라진다.
가을의 노래
가을의
구성지게 흐느끼는
바이올린 소리가
단조로운
우울함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
삼종 기도 종소리 울릴 때면,
온통 숨이 막히고
창백해져서
나는 옛날을
추억하며
눈물짓네.
떨어진 낙엽처럼
이리
저리로
나를 실어 가는
세찬 바람이 부는 대로
나는 휩쓸려 가네.
≪베를렌 시선≫, 폴 베를렌 지음, 윤세홍 옮김, 30~31쪽
이 시에서 바이올린 소리와 종소리는 무엇인가?
바이올린 현의 날카로운 진동음과 둔중한 타종 소리가 들리는가? 높게 혹은 낮게 울먹이는 인간 내면의 파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장치다. 치유할 길 없는 고독한 삶의 모습이다.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의 이미지로 풍경의 뉘앙스를 표현하면서 처량한 나그네를 질식시킬 것만 같은 영혼의 한기마저 그대로 전달한다. 몇 소절짜리 민요처럼 보이지만 독자의 열린 감각에 투명하게 배어드는 걸작이다.
당신이 소개하는 베를렌은 누구인가?
프랑스 사람 중에서는 드물게도 꾸밈없이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다. 프랑스 서정시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사랑을 노래한 프랑스 시가 기대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고 실망한다. 외국 문학을 소개하는 학자들이 문학 이념에만 관심을 둔 결과다. 그러나 이제 우리 독자들은 베를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시인의 사랑 노래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시인 폴 베를렌은 누구인가?
1844년에 태어나 가난과 질병, 광기에 시달리며 ‘저주받은 시인’으로 살았다. 1894년 시인의 왕이 되었고 1896년에 사망했다.
‘시인의 왕’이란 비유인가, 사실인가?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시인을 뜻하는 영예로운 칭호였다. 위고와 르콩트드릴도 이렇게 불렸다.
왕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1894년 9월 언론인 조르주 도쿠아(Georges Docquois)가 일간지 <르주르날(Le Journal)>에 의뢰해 설문조사한 결과다. 18세부터 25세까지 거의 400명에 달하는 문학가들에게 누가 왕인가를 물었다. 189명이 응답했고 이 가운데 77명이 베를렌이 왕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왜 그를 왕에 추대했나?
베를렌은 보들레르의 감성을 계승해 음악적 상징주의 시를 개척했다. 지금도 프랑스 학생들은 그의 시를 가장 자주 읽는다.
언제 그를 보았는가?
감수성이 극히 예민한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다. 쓰디쓴 불행의 독배를 숨기고 암울하게 채색된 황홀하고 유혹적인 보들레르의 우울이 그의 영혼에 새겨진다.
보들레르의 무엇을 보았는가?
1865년에 ≪악의 꽃≫에 관한 에세이를 쓴다. 시인의 예민한 감각과 고통스러울 정도로 섬세한 정신을 찬양한다. 보들레르처럼 감성이나 지성을 버리고 감각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누가 베를렌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가?
말라르메다. 베를렌의 첫 시집 ≪토성인의 시≫는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때 말라르메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내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상태로 다시 닫힙니다. 거의 항상 명작이며, 마치 악마가 쓴 작품처럼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보들레르의 계승자, 말라르메와 랭보와는 얼마나 떨어져 서 있는가?
말라르메는 형이상학 탐구 정신을 계승했다. 랭보는 환각 상태의 비전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었다. 둘 다 ‘신비’에 중독되어 독자로부터 멀어졌다. 베를렌은 음유시인으로 남았다. 독자 곁에 있다.
그런데 왜 베를렌의 이름은 낯선가?
랭보는 초현실주의 시인의 선구자가 되었고 말라르메는 상징주의의 수장이었다. 베를렌은 문학 이념 논쟁과는 거리를 두었다. 시인일 뿐이었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
영혼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떨림의 뉘앙스를 언어로 길어 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공기에 닿자마자 곧 사라져 버리는 모호한 노래 같은 것이다.
순간에 사라지는 모호한 노래는 어떻게 주조되는가?
그는 시어의 음향과 리듬을 암시적으로 조합하는 마법사였다. 이 능력에서 그를 따를 프랑스 시인은 없다.
날 때부터 마법사였나?
일찍부터 예민한 귀를 가졌다. 부모 손에 이끌려 다양한 음악 공연, 오페라 코미크 공연을 보면서 신비로운 멜로디의 감흥에 전율했다. 청년이 된 뒤에도 시상을 떠올릴 때면, 어려서 듣던 아리에타, 어머니의 자장가, 떠들썩한 춤곡, 감미로운 후렴구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되살아났다.
시의 음악성은 어떤 방법을 통해 문자에 담기는가?
모호한 암시 효과를 지닌 음악적 시어를 사용해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을 포착한다. 낭만주의 시의 과장된 감정 표현, 고답파의 객관적이고 정밀한 묘사를 갈음한 베를렌의 표현 기법이다.
그의 탁월성은 어디 있는가?
낭만주의와 고답파의 장점을 모두 취했다. 과장된 감정을 객관적이고 정밀한 묘사로 드러낸다. 청각 심상을 가진 음악적 시어로 암시 효과를 주어 인간 내면의 은밀한 파장까지 전달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세홍이다. 창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