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철 동화선집
권용철이 짓고 이성천이 해설한 ≪권용철 동화선집≫
당신의 동심은 어디에 있나?
권용철은 친숙한 자연 공간이나 일상의 낡은 풍경을 그린다. 그곳에 동심이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져온 어떤 광채 같은 것, 어린의 눈이 존재의 알몸을 드러낸다.
그런 어느 날 아침나절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분디나무에게 물을 주려고 하다가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 땅에 떨어진 꽃송이들이 마치 음표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오른손 검지로 꽃송이 사이에 줄을 그어 보았습니다.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뒤이어 또 하나 얼른 쳤습니다. 다음엔 잇달아 세 개를 더 그었습니다.
“오! 이럴 수가!”
≪권용철 동화선집≫, <분디나무와 작곡가>, 권용철 지음, 이성천 해설, 7쪽
이 동화를 오디오북으로 녹음도 했는가?
그랬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듣기 바란다.
어른이 동화를 듣나?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어린이 책으로서도 별 가치가 없다고 톨킨이 말했다. 귀 기울일 만하지 않나?
어른은 동화에서 무엇을 들을 수 있는가?
순정한 기쁨을 향수할 수 있다. 혼탁한 마음과 정신을 정화할 수 있다. 판단력도 좋아진다.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특별히 지금인가?
이 시대를 보라. 탐욕과 증오와 이기심이 팽배하지 않은가? 어른들이 동화를 가까이해야지 싶다.
동화 작가의 자기 작품 낭독의 역사는 어떤가?
안데르센은 국왕 앞에서 <전나무>나 <돼지 치는 머슴> 같은 자신의 동화를 낭독했다. 찰스 디킨스는 낭독 공연을 하면서 팬을 몰고 다닌 스타였다.
우리나라의 낭독 작가는 누구였나?
방정환은 동화 구연으로 유명했다. ≪어린이≫에 자신의 동네에 와 달라는 어린 독자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분디나무한테 교향곡을 얻었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작곡가 할아버지가 시골로 이사 온다. 분디나무의 역겨운 냄새를 싫어한다. 차츰 나무의 성장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그 모습을 통해 악상을 떠올린다.
교향곡을 부치려다 집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가?
“봄여름 내 땀 흘려 만든 열매와 잎사귀들을 남김없이 떨어뜨리고 빈 몸으로 서 있는” 분디나무의 뿌리 밑에 악보를 묻어 주기 위해서다.
왜 나무 밑에 악보를 묻는가?
세속적인 명예와 일시적인 영광의 포기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교향곡의 악보를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예술의 창조 과정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따른 삶을 추구해 본 작품이다.
평론가 이성천이 “동심의 현상학”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은 뭔가?
내 동화가 동심을, 존재의 본원적 마음을 살려 보인다는 뜻이다.
동심을 무엇으로 살려 보이나?
“친숙한 자연 공간이나 일상의 낡은 풍경들”이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진선미를 본질로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미성숙한 심적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융이 말한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광채 비슷한 것인가?
그렇다. 인간이 탄생할 때 저세상에서 어떤 광채 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 빛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점차 퇴화하여 무의식의 저변으로 침잠한다. 그것을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시킬 수 있다면 인간의 정신과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융은 말했다.
당신의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은 무엇인가?
유년기가 인생의 전 시기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어린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미래지향적인 존재다. 그들에게 광활하고 풍요롭고 변화무쌍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린이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
그리 우려할 것 없다. 어린이들은 새롭고 알지 못하는 세계를 갈구한다. 덧셈만 아는 어린이에게 나눗셈은 어려우니 계속 덧셈만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가?
미지의 세계는 허황되지 않은가?
판타지는 결코 무모하거나 황당한 세계가 아니다. 상상력으로 마음의 도화지에 그린 그림이다. 육안으로 보지 못할 뿐이다. 인간이 창조한 문화와 문명은 판타지를 형상화 내지 실체화한 것이다. 문화와 문명의 모태가 판타지다.
판타지에 진실이 있는가?
판타지 동화는 허구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므로 자칫하면 진실성을 상실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사문학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문법이나 질서를 어떤 문학보다도 더 사실적·합리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동화를 쓰는가?
생래적인 고독과 불안에 시달릴 때, 혹은 막연히 무엇인가 그리워질 때, 삶이 고단하거나 무의미해지며 왜 사는가 하는 상념이 들 때, 읽으면 생존 자체가 축복으로 여겨지며 인간이 존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지고, 닫혀 있던 마음의 창문이 열리며, 세상을 사랑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마음이 무구한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지며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지고, 삶과 자연과 우주의 비의와 경이로움을 깨닫게 해 주는 동화를 창작하기를 희원했다.
무엇을 소망하는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30대 후반부터 마지막 작품으로 써야지 하고 생각해 왔던 동화를 창작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써 온 작품들을 전집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못 한다 하더라도 그리 아쉬울 것은 없다. “시를 썼으면 땅이나 하늘에 묻어 둘 일이거늘” 하고 정현종 시인이 노래했듯이, 이 세상과 작별할 때 그 소망들을 저쪽 세상으로 가져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으니까. 어디 이승만 세상인가. 스티븐 호킹은 11차원의 세계까지 존재한다고 하지 않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권용철이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