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
지만지 4월 신간 4.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이해
강형구가 옮긴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Philosophic Foundations of Quantum Mechanics)≫
참과 거짓이 아닌 진리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참이다. 있는 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인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실은 미결정의 진리를 요구한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언어가 가진 명료함과 정확함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철학적 사변을 지지하는 데 오용되어서는 안 된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문제들은 과학에 대한 분석과 기호논리학을 통해 발전한 과학적 철학의 영역 내에서만 해결되어야 한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 한스 라이헨바흐 지음, 강형구 옮김, 40~41쪽
한스 라이헨바흐는 물리학자인가, 철학자인가?
20세기 전반에 활발히 활동한 철학자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통계역학 같은 현대 물리 이론을 분석한 과학철학자다.
왜 철학자가 과학 이론을 분석하는가?
19세기 중엽 이후 과학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은 과학 탐구 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세계의 작동 방식과 구조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여전하다. 이때 철학자가 도움이 된다. 철학의 분석 방법으로 당대 과학 이론의 의미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
과학에 대한 설명은 과학자가 해야 하지 않는가?
전문화 이후 과학 이론은 과학자 집단 특유의 협업과 경쟁 체제에서 생산된다. 이런 공동 작업을 통해 발전된 양자역학은 실험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을 만든 과학자들 본인도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양자역학 해석은 뭔가?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코펜하겐의 물리학 연구소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을 발전시켰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다. 그러나 동료 물리학자들은 보어의 견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이 책은 코펜하겐 해석의 해설판인가?
그렇지는 않다. 라이헨바흐는 양자역학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명한다. 코펜하겐 해석과는 다소 상이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양자역학이 그 이전의 물리 이론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고전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당연한 약속으로 전제한다. 자연법칙, 그리고 대상의 상태는 대상의 관측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자연의 여러 현상을 기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이 두 약속을 유지할 경우 자연을 기술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어떤 문제인가?
물리학에서는 사물의 움직임을 기술하고자 그것에 물리량을 부여한다. 그리고 운동 법칙을 통해 물리량이 시공간 틀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술한다. 고전역학에서는 물체의 운동을 예측, 계산하는 데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물리량을 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그 물리량을 유지할 경우 인과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이전에는 ‘파동’으로 특성 지을 수 있었던 대상이 또 다른 측정에서는 어느 순간 하나의 점으로 오그라든다. 이것을 축퇴 현상이라 하는데, 이는 공간을 뛰어넘어 순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인과 원리에 위배한다.
입자-파동 이중성을 말하는가?
그렇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미시세계에서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현상을 ‘입자-파동 이중성’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설명이 이러한 수준에서 그치면 미시세계는 신비로만 남게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물체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현상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미시세계에서 이러한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면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세하게 분석해야 한다.
라이헨바흐가 미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제일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측정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약속 또는 규약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무슨 말인가?
내가 방금 전까지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있었다고 해도 고개를 돌리면 나무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고개를 돌리는 동안 그 나무가 계속 서 있는지 아니면 사라지는지를 확실하게 말할 수 없게 된다. 고개를 돌리는 동안 그 나무가 사라졌다가 내가 다시 나무를 보려고 할 때 맞춰서 나무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을 왜 하나? 보고 있지 않아도 나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라이헨바흐는 그러한 우리의 생각이 경험적으로는 입증될 수 없는 하나의 약속, 다시 말해 일종의 ‘규약’이라고 여긴다. 단, 그렇게 되면 앞서 말했던 고전역학의 두 가지 원리에 위배된다.
무엇이 위배되는가?
라이헨바흐는 고전역학의 두 원리를 만족시키는 기술 체계를 ‘표준 체계’라고 부른다. 우리가 측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을 ‘현상’이라 부르고, 측정 사이에 대상이 갖는 상태를 ‘사이현상’이라 부른다. 고전역학에서는 현상과 사이현상을 동시에 기술하는 표준 체계가 존재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현상’과 사이현상을 동시에 기술하려고 할 경우 늘 특정한 방식으로 인과성의 원리가 위배된다. 라이헨바흐는 이를 ‘변칙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차이가 뭔가?
고전역학의 메타언어가 이가논리학을 사용한다면 양자역학의 메타언어는 삼가논리학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가논리는 명제 또는 진술에 ‘참’ 또는 ‘거짓’의 진리값을 부여한다. 하지만 삼가논리에는 참, 거짓 말고도 ‘미결정’이라는 진리값이 있다.
양자역학 언어에 삼가논리를 도입하면 무엇이 해결되나?
삼가논리학을 사용하면 ‘인과성의 원리’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두 종류의 현상을 동시에 기술할 수 있다.
라이헨바흐의 삼가논리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과 어떻게 다른가?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사이현상에 진리값을 부여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본다. 하지만 라이헨바흐는 이런 관점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본다. 삼가논리를 도입하면 양자역학의 많은 진술들을 의미 있게 유지할 수 있다.
이 책의 철학적 가치는 무엇인가?
19세기 이후 철학은 과학과 사이가 멀어졌지만 사실 서양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철학과 과학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했다. 이 책은 과학이 고도로 전문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과학의 실제 내용과 밀접하게 연계된 철학 탐구가 가능함을 보여 준다.
누구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가?
물리학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양자역학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공계 학생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논리경험주의와 20세기 분석철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이나 학자들에게도 유용한 자료다.
당신은 누구인가?
강형구다.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