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은하계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발견
블레이크는 서사시《예루살렘》에서 말했다.
“일곱 나라가 그 앞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그들이 보았던 그대로가 되었다.”
매클루언은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쓰고 말하는 그대로가 되었다.”
우리는 어쩌다 우리가 되었단 말인가?
마셜 매클루언이 쓰고 임상원이 옮긴 《구텐베르크 은하계(The Gutenberg Galaxy)》는 서양 문명의 가장 넓은 강물의 가장 깊은 수원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왜 모두 비슷하게 생각하고 똑같이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이 책보다 더 심리적이고 물질적인 책은 찾기 힘들다.
《구텐베르크 은하계》, 마셜 매클루언 지음, 임상원 옮김, 610쪽, 2만7000원, 커뮤니케이션북스
표음 문자인 알파벳 기술의 내재화(內在化)는 인간을 귀[耳]라는 마법의 세계에서 중립적인 시각의 세계로 옮겨 놓았다.
문명은 야만적 혹은 부족적 인간에게 귀 대신 눈을 중요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오늘의 문명을 전자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전자적 상호의존성은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이미지의 존재로 재창조하고 있다.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시각 강조 현상이 증대됨에 따라 그들은 원시 사회의 예술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전기적 동시성이라는 통합된 장(場)을 내재화(內在化)하면서 그때의 원시 사회 예술을 재창조하고 있다.
필사 문화와 고딕 건축은 모두 ‘겉을 비추는 빛(照射光)’이 아니라 ‘안으로 투과하는 빛(透過光)’을 중요하게 취급한 양식들이다.
활판 인쇄의 발명은 응용 지식의 특징인 새로운 시각 강조를 보증하고 확대하였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획일적이고 반복 생산 가능한 최초의 ‘상품’이며, 최초의 조립 라인, 최초의 대량 생산 방식이었다.
인간에 의해 고안되어 외화(外化)된 모든 기술은, 그것이 내재화된 초기에는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인쇄술에 의한 머리와 가슴의 분리는 마키아벨리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신적 외상(外傷)이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의 휴대성은 화가의 이젤(easel-painting)처럼 개인주의에 대한 숭배를 낳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데카르트가 기계파를 탔을 때 그랬던 것만큼이나 하이데거는 의기양양하게 전자파를 타고 나간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이론적으로 1905년 곡선형 공간의 발견과 함께 해체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그보다 2세대 앞서 전신(telegraph)의 발명과 함께 침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