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선 초판본
한국 시 신간 <<초판본 김현승 시선>>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산 까마귀 한 마리가 긴 울음을 남기고 지평선을 넘어간다. 검은색 바리톤은 대기에 악보가 되어 남았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도 내일도 그럴 것처럼. 이제 나의 넋에게 묻는다.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그곳에서도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김현승의 시 한 편을 꼽는다면?
<마지막 地上에서>다.
무엇에 관한 시인가?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죽음을 통한 구원에 대한 갈망, 그리고 초월 의지다.
시를 보고 싶다.
≪초판본 김현승 시선≫ 267쪽을 보라. 이런 시다.
<마지막 地上에서>
산까마귀
긴 울음을 남기고
地平線을 넘어갔다.
四方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시인이 쓰러져 별세하기 한 달 조금 전에 쓴 시다. 천형을 짊어진 원죄의 새이며 고독한 영혼의 새인 까마귀, 즉 시인의 분신이 이승의 고달픈 삶을 마감하고 지평선을 넘어가 사후의 세계, 즉 초월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라고 영탄한다. 이제 시인은 절대자에게 온전히 귀의함으로써 영적 세계와 교통함으로써 죽음에 초연할 수 있었던 듯하다.
김현승은 누구인가?
가을 정신 또는 고독의 사상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고독으로서 삶의 원상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대표적 종교시인이자 명상시인이다.
어떻게 시를 시작했나?
1934년, 숭실전문학교에 다닐 때였다. 양주동의 소개로 장시 2편을 동아일보에 발표했다.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 2편이다.
이 시인의 아이덴티티는?
태중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선험적 퓨리터니즘과 휴머니즘 사이에서 갈등한 시발이다. 사회정의에 대한 추구가 기독교 정신과 밀착되어 드러난다.
어떤 시를 썼나?
신 앞에 선 인간으로서 회의와 좌절, 신을 잃은 인간이 겪는 고독과 슬픔을 노래했다.
무엇을 추구했는가?
절망의 끝에서 절대적 신앙의 경지로 초월하고자 했다.
핵심 개념은?
고독이다. 견고한 고독과 절대고독으로 대표되는 실존적 고독의 문제다.
그에게 고독은?
관념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정의 열매 혹은 혼의 양식이며 생명의 에센스다.
고독에 천착한 이유는?
실존적으로 한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이 그에게 고독감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모순에 대한 각성이라 볼 수 있다. 비사교적인 성격이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도 전해진다.
고독을 극복하는가?
자연-인간-신의 상관관계 속에서 실존적 존재로서 겪는 고독을 절대자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극복한다.
절대자를 찾은 이유는?
그의 선험적 퓨리터니즘이다.
경험적 원인은 없었을까?
1973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에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다.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절대자에게 온전히 귀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게 절대자란?
회의와 절망 끝에 도달한 광명이며 구원이며 진리로 가는 길이다.
절대자에게로의 접근 방법은?
소멸과 생성, 죽음과 부활이라는 변증법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인간 존재의 실상을 발견한다.
시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시 <離別에게>의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릴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라는 구절을 보라. 소멸과 생성의 원리가 보이지 않는가.
자주 사용한 이미지는?
‘견고한 고독’, ‘절대고독’, ‘가을’, ‘까마귀’ 등이다.
가을은 어떤 이미지인가?
생명의 소멸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시간이며, 자신의 본질로 회귀하는 시간으로서 고독한 영혼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그에게 ‘가을 정신’이란 삶의 경건함과 겸손함을 일깨워 주고 자유의지를 인식시키는 정신을 의미한다.
가을은 어떻게 고독한가?
김현승은 가을이 불러일으키는 애수를 바탕으로 고독과 자유라는 생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한다. 만남과 헤어짐, 생성과 소멸, 상승과 하강의 원리를 가진 ‘가을’의 이미지를 인생과 결합시킨다.
김현승의 메시지는?
참된 삶에 대한 용기는 고독의 최후에서 비롯된다. 삶은 소멸과 생성의 거듭남을 통해 완성된다.
평가는?
시인 조태일은 “신성과 결부된 자연을 통해 인간적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양심의 견고함을 바탕으로 사회정의를 노래했다”고 평했다.
독법은?
김현승은 신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통해 고독의 세계를 추구했으나 최후에는 절대자에게 온전하게 귀의한다.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고 영혼의 본질에도 도달하길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현숙이다. 가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