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수 시선 초판본
한국시 신간 ≪초판본 임학수 시선≫
오, 자유! 일체가 평등!
일제가 물러가면 새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지만, 자유로운 세상에서 평등하게 살리라 희망했지만, 일하고도 먹을 수 없는 현실 그리고 채찍과 배고픔은 여전했다. 자유와 평등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흔한 이름이지만 한 번도 그냥 주어진 적이 없는 최고가의 역사재라는 사실을 그때 우리는 아직 몰랐던 것일까?
<새날을 맞음>
꿈에서 살던 그대 이제야 오는다?
구름으로 繡놓아 별로 아로삭인
그대 象牙의 상자를 열으라.
하나는 自由.
하나는 平等.
꿈에서 살던 그대 이제야 오는다?
혹독한 쇠사슬과 주림, 暗黑,
이 두꺼운 獄門을 깨치라.
거리에는 넘치는 旗ㅅ발, 松門의 洪水,
씩씩한 行進과 嚠喨한 軍樂으로
가장 호사로히 嚴肅히 그대를 맞으리.
피는 뛰나니!
그대 맞는 기꺼움에
몸은 떨리고 귀에는 요란한 鐘소리 끊임없나니!
이 밤이 지내는 아침,
붉은 太陽이 山과 山 바다와 바다를 휩쌀 지음,
그대 燦爛한 金冠을 쓰고
蕯水 옛 싸움에 저 風雲을 희롱하던 칼을 춤추어
가장 儼然히
步武堂堂 내 앞에 나타나오리.
오, 自由!
一切가 平等!
隸屬과 傲慢과 缺乏과 이 악착함이
어찌 호사로운 그대 앞에야 다시 용납되오리?
이제 마침내 그대는 오나니,
이 地球의 가시덤불 위에
왼갓 罪惡을 淸算할 새날은 왔나니,
내 꿈에 살던 그대 永遠히 내게 있으라.
그대 華麗한 상자를 열어 흩으라.
≪초판본 임학수 시선≫, 임학수 지음, 윤효진 엮음, 66∼67쪽.
기쁨과 기대가 과하지 않았을까?
암흑시대가 끝나고 광복의 날이 왔다. 자유와 평등의 기회가 열렸다. 행복을 꿈꾸는 시인의 마음이다. 바로 ‘필부의 노래’다.
임학수가 누구인가?
시인이자 영문학자고 번역가다.
문학의 출발은?
1931년 <우울(憂鬱)>과 <여름의 일순(一瞬)>으로 ≪동아일보≫에서 등단했다. 시집을 다섯 권 냈고, ≪시문학≫, ≪문학≫, ≪신인문학≫, ≪인문평론≫에도 적극 참여했다.
번역 업적은?
≪현대 영시선≫, ≪19세기 초기 영시집≫, ≪초생달≫, ≪챠일드 하롤드의 편력기≫ 등의 시, ≪일리어드≫, ≪이도애화(二都哀話)≫ 등의 소설을 번역했다.
못 보던 이름이다.
1930년대 후반에 ≪전선시집≫ 등으로 일제에 협력했다. 6·25 전쟁 중에 납북되어 북한에서 영문학자로서 활동했다. 친일과 납북은 양대 금기 사항이었다.
≪전선시집≫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황군작가 위문단으로 전선 시찰 후 쓴 시집이다.
지금 임학수를 추천한 당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의 시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다. 우리 현대 문학사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는 납·월북 문인을 정확히 연구해야 한다.
시는 어떤가?
서정성을 기초로 낭만적 세계관을 보인다.
배경은?
경성제대 영문학부에서 접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나 셸리, 키츠다.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그의 특징이다.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슬픔과 절망을 그렸다.
≪팔도풍물시집≫은 기행시 아닌가?
팔도 풍물을 단순히 묘사하지 않았다. 문화를 통해 민족 자긍심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민족애는 그의 시에 어떻게 조형되는가?
<남한산성>과 <남해에서>의 마지막 연이 이렇다.
“丈夫의 鐵石 氣槪를/ 애닲다 써 볼 곳이 없고나!”,
“여기가, 여기가/ 북 울려 旗폭 날려/ 소스라친 波濤를 먹피로 물디리던 곳이어늘!/ 아, 孤島의 저믄 봄/ 나는 이제 무엇으로 이바지할꼬?”
나라 잃은 지식인의 깊은 고민과 갈등이다.
어디까지 갔나?
행동에는 닿지 못했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지식인에 머물렀다.
≪필부의 노래≫는 어떤가?
서문에서 “嘵箭이 나타나기 前 匹夫의 焦燥한 祈願일러라”고 밝혔듯 “왼갓 죄악을 청산할 새날”이 왔기에 꿈에 그리던 날에 대해 행복한 꿈을 노래한다.
그가 기다린 새날은 어떤 날인가?
<언제나 오느냐>에서 기다리는 ‘살기 좋은 날’, 자유가 보장되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보람 있는 날’이다.
그날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가?
해방이 되어도 일제시대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채찍과 배고픔에 신음”하는 삶은 그토록 기대했던 새날이 아니었다. 시인은 이렇게 한탄한다.
“에익 亡할!/ 일하고도 먹을 수 없는 건 무슨 일이람?”,
“우리들은 아직도 옛날과 다름없는/ 채찍과 배고품에 呻吟하고 있답니다.”
좌절했나?
우수한 민족정신이 우리를 희망의 날, ‘새날’로 인도할 것이라고 끝까지 믿었다.
형식 특징은?
기행시, 산문시, 풍물시 등 실험 정신이 엿보이는 시를 썼다.
어떻게 살았나?
할아버지는 부농이었고 아버지는 신식 문명에 깨어 있어 유복하게 자랐다. 경성제대 졸업 후 교원으로 재직했으며 해방 후 고려문화사 주간과 ≪민성≫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사범대 교수, 숙명여대 강사, 이화여대 강사, 고려대 교수를 지냈다.
북한에서는 뭘 했나?
김일성대학 어문학부 교수와 학장, 평양 외국어대학 영어과 강좌장을 지냈다. 말년까지 교편을 잡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외국 문학을 번역 소개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고 한다.
≪초판본 임학수 시선≫에서 우리는 뭘 볼 수 있을까?
민족 자긍심과 애국심, 조선과 조선 풍물에 대한 애정, 민족의 설움과 절망,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만나 보길 바란다. 이제 그의 문학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