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일본 소설 소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芥川龍之介 短篇集>>
너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는 돌아가겠다고 소리친다. 소설 <갓파>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지금까지 들어온 길을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돌아갔을까? 돌아갈 곳은 있었을까? 검은 한 점으로만 보이는 처음을 바라보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지.”
“하나밖에 없다 하시면?”
“그건 자네가 여기로 온 길이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왠지 소름이 끼쳤습니다.
<갓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김명주 옮김, 140~141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주장인가?
주인공이 갓파의 나라에 사는 신선을 찾아가 인간계로 나갈 길을 묻는 장면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부정해 온 자신의 삶을 이제 긍정하겠다는 의미다. 죽음을 결의하고 있던 그의 절망감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작가인가?
이지파, 기교파, 신현실주의, 신사조파, 국민 작가, 청춘의 작가라는 말을 듣는다. 일본 근대문학의 챔피언이 가장 흔한 별명이다.
이지파란 주지적이란 말인가?
데뷔 당시부터 듣던 말이다. 번거로운 명칭일 뿐이라며 불쾌해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인가?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재학 중 나쓰메 소세키에게 극찬을 받고 습작기도 없이 화려하게 데뷔한다.
역사학자가 꿈이지 않았나?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지만 작가가 된 후 2등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작가로서 10여 년 남짓 살았지만 작품은 140편이 넘는다. 예술가로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살의 이유가 뭔가?
36세 되던 1927년 여름날 새벽, 자택에서 수면제를 먹고 죽었다.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 그저 멍한 불안 때문이라고 유서에 적었다. 예술가로서 존재 증명 같은 거다.
한국 작가 이상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나?
문학적 세례를 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상은 20세 무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을 읽고 나서 “작가가 되어야 할까 봐”라고 중얼거렸다. 이상의 <날개>의 서장에 나오는 ‘박제된 천재’가 바로 아쿠타가와라는 것이 정설이다.
탐미주의나 자연주의, 인도주의와의 관계는?
사상적 테두리를 싫어했다. 문학과 모든 이념의 벽을 넘어 보편을 열망했다.
일본 전통 미학과도 거리를 두었나?
인간 보편의 심리를 추구했다. 그의 미학의 진수는 일반성에서 비롯된다.
단편의 명수가 된 이유는?
장편과 중편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단편에 뛰어났다. 작품 대부분이 동서고금 작품의 패러디라 할 정도여서 창의성은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일찍이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고 평가될 정도로 박학한 지식과 스토리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은?
<지옥변>, <무도회>, <갓파>다. 전·중·후기 대표작을 골랐다.
아쿠타가와 문학의 전개 과정인가?
그는 장밋빛 여명의 문학에서 황혼의 문학으로, 또 어둠의 문학으로 나아갔다.
어둠은 무엇으로 돌파했는가?
죽음으로 돌파하고 빛의 문학으로 나갔다. 세 작품은 그의 정신 변용 과정을 샘플처럼 증언한다.
<지옥변>은 어떤 작품인가?
전기 역사물의 대표 작품이다. 자연주의 전성기에 데뷔해서 기성 비평가에게 적지 않게 비판을 받았을 때다.
예술지상주의 작품인가?
생활과 예술의 갈등 구조 속에서 예술로 생활을 지양하는 장엄한 예술혼을 보여 준다. 아쿠타가와는 당시에 문단의 주류였던,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쓴다는 자연주의의 ‘사소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인공 화가 요시히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이다. 그녀의 딸은 인생, 영주는 권력을 상징한다. 삼자 대립 구도에서 예술의 승리를 구가하는 예술가의 장엄한 삶을 재창조한다.
지옥변이란 무엇인가?
요시히데가 영주의 명을 받아 그린 병풍화 이름이다. 보지 않은 것은 그릴 수 없는 요시히데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딸이 불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서야 염열지옥의 마지막 그림을 완성한다.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예술의 승리인가 패배인가의 문제, 딸과 영주와 아버지의 욕망의 삼각 구도에 대한 정의, 그리고 딸을 범한 자가 영주인가 아버지인가에 대한 답도 있다.
후기작 <갓파>는?
일본 근대 지식인으로서 죽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자의식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출한, 자살 직전의 유서 같은 작품이다. 다른 세계로 간다는 점에서 일본판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나 새뮤얼 버틀러의 ≪에레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갓파가 등장하는 이유는?
일본 민담에 나오는 물에 산다는, 상상 속 동물이다. 산업화로 물이 오염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민속학적 모티프를 문학적 모티프로 잘 포착했다.
주인공이 정신병자인가?
어느 정신병원에서 젊은 환자의 고백으로 서술되는 작품이다. 그는 등산 중 우연히 갓파의 나라로 들어간다. 인간계와는 모든 면에서 반대인 그 나라의 주민으로 체류하지만, 염증을 느껴 인간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갓파의 나라로 되돌아가려 한다. 인간계는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해 병원에 감금시킨다.
근대 지식인의 초상인가?
예술과 인생의 모습을 일본의 민속학적 모티프인 갓파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수직으로 하강하는 지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갓파의 나라는 근대 지식인의 인식 세계라 할 수 있다. 그 지하 세계를 모르는 표층에 인간계가 있다. 상식을 바로미터로 해서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의 상징이다.
당신은 어떤 인연으로 아쿠타가와를 만나게 되었나?
이상처럼 치열했던 그의 예술가적 생애에 현혹되었다. 젊은 내게는 그의 이지적인 글쓰기 자세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옮기면서 뭘 생각했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쓰는 작가다. 기교적 표현과 복잡한 설정을 헤아리는 것이 힘들었다. <지옥변>은 고대 일본이 배경이라서 그 시대의 사회문화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명주다. 경상대학교 일어교육과에서 일본 문학을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