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량 작품집 초판본
한국 현대 소설 문학 신간 ≪초판본 김사량 작품집≫
소설가 김사량
그는 한국인이지만 일본말로 소설을 썼다. 일본 제국주의가 인간의 자기 동일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증언했다. 그에게 일본은 근대를 학습하는 공간이었고 중국은 자기 부정을 통해 근대를 극복하려 했던 혁명 공간이었다. 개인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동북아와 조선의 실존이었다. 말이 문제일까?
“아니!”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도 제국대학이나요?” 그는 정말로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 “조선 사람도 넣어 주나요?”
“그야 누구나 다 넣어 주지. 시험만 잘 치면…”
“거짓말이에요. 우리 학교 선생님이 다 말해 주었어요. ‘요 조선 놈, 할 수 없구만. 소학교에 넣어 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하고.”
“어,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도 있나. 그래서 학생이 울었나.”
“울 게 뭐예요. 울지 않아요.”
“그래. 그 애 이름이 뭐냐? 한번 선생님한테 데려오너라.”
“싫어요.”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없어요, 없어요.”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았어요.”
그는 흥분해서 제 말을 취소했다. 정말 이상한 아이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 그와 거의 동시에 나에게는 혹시 이 애가 조선 아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나는 놀란 듯이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표정이 굳어진 그는 경계하듯이 뒷걸음질을 쳤다.
어떤 대목인가?
<빛 속에>의 한 장면이다. 조선인 대학생인 ‘나’는 일본의 빈민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에는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하루오가 있다. 어머니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숨기고 산다. 이 장면은 하루오가 자칫 자기 정체가 드러날까 봐 과민반응하는 부분이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비하하는 실상도 암시된다.
<빛 속에>는 어떤 작품인가?
일본어로 쓴 단편소설이다. 일본의 문예잡지 ≪문예수도≫ 1940년 2월호에 실렸다. 김사량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이다. 이 책은 우리말 번역을 실었다.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 되어 주목받았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오를 감싼다. 소년은 ‘조선적인 것’을 긍정하고 조선인 어머니에 대해서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이 ‘나’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통해 날카롭게 포착되고 있다.
김사량의 의도는?
암울한 시기에 일본의 조선인 멸시사상을 부정하고 ‘일본적인 것’과는 융합될 수 없는 ‘조선적인 것’을 섬세한 문체를 통해 길어 올린다.
일본의 평가는?
이런 작품 세계는 당시 일본 지식인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본 문단에서는 ‘소설 속에 민족의 비통한 운명을 충분히 엮어 넣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북한의 평가는?
‘우리 인민의 비참한 모습과 식민지 인텔리의 정신적 고민, 민족적 의식을 보여 준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운명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지 못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지는 못했다. 당시 시국과 검열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초판본 김사량 작품집≫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나?
<빛 속에>와 <칠현금>을 골랐다.
<칠현금>은 어떤 작품인가?
1949년 북한에서 쓴 작품이다. 북한스러운 느낌이 들어가 있다. ‘칠현금’은 악기 이름이다. “칠현금을, 칠현금을 나에게 다오. 싸움의 노래를 부르리니”라는 하이네의 시 구절에서 나온다. <칠현금> 속 주인공이 이 구절을 외운다.
스토리 라인은?
지방의 한 제철소에 파견된 작가 S가 윤남주라는 노동자에게서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이끌어 주는 과정을 그렸다. 윤남주는 일제 강점기 끝 무렵에 척추를 다치고 몇 년째 입원 중이다. 반신불수지만 문학에 전념하며 작품 말미에서 가서는 재기의 희망을 보인다.
북한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
‘재생의 노래인 동시에 인간을 다면적으로 그리며 그 내면세계를 깊게 파고드는 작가의 재능을 보여 준다. S에게서 들끓는 현실 속에 들어가 노동계급의 고상한 사상과 기품을 배우며 문학의 새싹들을 키워 내는 당적 작가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당적 작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창작 여건상 이념 지향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김사량 특유의 섬세한 문체가 북한 체제에서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김사량과 일본의 관계는?
일본어로 작품을 썼다. 그러나 친일과는 관계없다. 그는 1945년 5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연안으로, 항일 근거지인 태항산 남장촌으로 망명했다. 일명 연안파다.ㅇ
인생 굴곡이 어떠했는가?
거의 동북아시아 전체를 가로지른다. 인생뿐 아니라 작품 배경도 그렇다. <빛 속에>의 배경은 일본, ≪노마만리≫의 배경은 중국이며 <칠현금>은 북한이 무대다. 한국전쟁 때 쓴 종군기까지 치면 남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그의 문제적 삶을 보여 준다.
김사량을 우리는 정당하게 평가해 왔는가?
한동안 그는 남·북한 어디의 문학사에서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 남한에서는 월북 문인으로 간주됐고, 북에서는 출신 성분이 부르주아라는 점과 소위 연안파라는 계보 때문에 배척됐다.
현재 남·북한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에서는 1987년에 ≪김사량 작품집≫이 나와서 부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남한에서도 1990년대부터 연구가 이뤄졌고 2000년대에는 친일 문학 작품 목록에서 빠졌다.
그에게 일본과 중국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은 유학생 신분으로 경험하는 ‘근대 학습의 공간’이었다. 중국은 망명객 신분으로 ‘자기 부정을 통해 근대를 극복하려 했던 혁명의 공간’이었다.
일본어로 글을 쓴 이유는?
일본어로 쓰면 ‘일본적인 감각이나 감정에 휩쓸려 갈 듯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도 일본어 창작을 한 이유는 자기 작품의 실제 독자를 조선에 거주하는 조선 민중이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봤기 때문이다.
일본어 창작의 위험성을 어떻게 예방했나?
‘일본적인 감각이나 감정에 휩쓸려 갈 듯한 위험’을 막는 방법은 팽팽한 긴장감을 통한 자의식 유지였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그에게 동일한 언어였나?
그렇다.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위선과 비굴을 비판하기보다는, 이렇게 비겁하고 모순된 존재들을 낳게 한 일본 제국주의의 차별 정책과 구조적 억압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탄압에 응전하는 문학적 방식이다. 김사량 작품에 저항 의식이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 일본어로써 조선의 현실을 그렸다는 점은, 일제의 탄압을 유연하게 피해 가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태항산으로 망명한 이유는?
저항의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중국으로 가서 중국인이나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 제국을 피해 도망 온 일본인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파시즘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인류 공통의 노력 속에서 동북아와 조선을 읽으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김사량의 시각은 분명 세계적인 것이다.
망명지에서도 작품을 썼나?
≪노마만리≫를 썼다. 당시 조선의용군의 행적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료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에는 ‘도시 인텔리의 습속’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던 지난 삶에 대한 반성과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이 나타난다. 소설가의 자의식보다는 혁명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부르주아 출신인가?
1914년에 평양의 부유한 집안 4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시창’이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북한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1950년 10월 원주 부근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고인환이다. 평론을 하고 있다. 2006년에 ‘젊은평론가상’을 받았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