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경 천줄읽기
우화한 세계 1. 동방삭의 ≪신이경神異經≫
궁기와 해치수가 싸우면
궁기는 정직한 사람은 잡아먹고 흉악한 사람에겐 선물을 바친다.
해치수는 잘못한 사람을 들이받고 거짓말한 사람은 물어 씹는다.
궁기와 해치수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유치한 상상이지만, 응원할 쪽은 명확하다.
응? 아닐 수도 있다고?
궁기窮奇
서북쪽에 있는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호랑이와 비슷한데 날개가 있다. 날개로 날 수도 있어서 사람을 채뜨려 잡아먹는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서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번번이 정직한 사람을 잡아먹는다. 누군가가 성실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의 코를 베어 먹고 흉악하고 선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짐승을 잡아서 선물로 바친다. 이름을 궁기(窮奇)라고 하며 여러 새나 짐승도 잡아먹는다.
西北有獸焉, 其狀似虎, 有翼, 能飛, 使剿食人. 知人言語, 聞人鬪, 輒食直者. 聞人忠信, 輒食其鼻, 聞人惡逆不善, 輒殺獸往饋之, 名曰窮奇*. 亦食諸禽獸也*.
* 궁기(窮奇): ≪좌전(左傳)≫ 문공(文公) 18년에서 궁기는 소호씨(少昊氏)의 불초자식으로 전해진다. ≪산해경≫ <서산경(西山經)>에는 “산 위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생김새가 소 같고 고슴도치 털이 나 있다. 이름을 궁기라고 하며 소리는 개 짖는 것 같고 사람을 잡아먹는다(其上有獸焉, 其狀如牛, 蝟毛, 名曰窮奇, 音如獆狗, 是食人)”라는 문장이 보인다. ≪산해경≫ <해내북경(海內北經)>에도 역시 궁기에 관한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궁기는 생김새가 호랑이 같은데 날개가 있다. 사람을 잡아먹을 때는 머리부터 먹으며, 사람의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놓고 먹는다. 궁기는 도견(蜪犬)의 북쪽에 살고 있다. 혹은 (사람을 잡아먹을 때) 발부터 먹는다고도 한다(窮奇狀如虎, 有翼, 食人從首始, 所食被髮, 在蜪犬北, 一曰從足).”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궁기의 모습은 ≪산해경≫ <해내북경>에 토대를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 역식제금수야(亦食諸禽獸也): 문장 끝에 다음과 같은 주가 있다. “생각건대 다른 판본에는 ‘궁기는 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리의 꼬리가 있다. 꼬리는 길어서 땅까지 닿는다. 소리는 개와 비슷하고 개의 머리에 사람의 몸이며 갈고리 손톱에 톱 이빨이 있다. 성실한 사람을 보면 물어뜯고 간사한 사람을 보면 새나 짐승을 잡아 가지고 찾아간다’라고 했다(按別本云, 窮奇, 似牛而狸尾, 尾長曳地. 其聲似狗, 狗頭人形, 鉤爪鋸牙. 逢忠信之人, 齧而食之. 逢姦邪者, 則禽禽獸而伺之).” 궁기의 모습이 소와 비슷하다고 표현한 것을 보건대 주에서 말한 “다른 판본”은 ≪산해경≫ <서산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궁기의 모습은 호랑이를 닮은 것과 소를 닮은 것 두 가지 설이 동시에 전했음을 알 수 있다.
해치수獬豸獸
동북의 변경에 있는 어떤 짐승의 생김새는 양과 같으나 뿔이 하나 있고 털은 푸른빛이며 네 발은 곰과 같다. 천성적으로 충성스럽고 정직하다.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 잘못한 사람을 들이받고 말싸움하는 것을 들으면 거짓말한 사람을 물어 씹는다. 이름을 해치(獬豸)라고 하고 일명 임법수(任法獸)라고도 한다.
東北荒中有獸焉, 其狀如羊*, 一角, 毛靑, 四足似熊. 性忠而直, 見人鬪則觸不直, 聞人論則咋不正. 名曰獬豸, 一名任法獸*.
* 양(羊): ≪개원점경(開元占經)≫ 권 116, ≪태평어람≫ 권 890의 인용문에는 “우(牛)”로 되어 있다. ≪설문해자≫ 제14에 “치(廌)는 해치(解廌)다. 소와 비슷하나 뿔이 하나 있다. 옛날에는 판결을 내릴 때 해치를 시켜 거짓말한 사람을 들이받게 했다(廌, 解廌獸也. 似牛, 一角. 古者決訟, 令觸不直者)”라고 되어 있다. 한편 ≪논형(論衡)≫ 권 17 <시응편(是應篇)>에는 “해치는 뿔이 하나인 양이다. 푸른색에 발이 네 개인데 거짓말과 바른말을 알아낼 수 있고 천성적으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분별해 낸다(觟角養者, 一角之羊也. 靑色, 四足, 能知曲直, 性識有罪)”라고 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 <여복지(輿服志)>에는 “해치(獬豸)는 신통한 양이라서 거짓말과 바른말을 가려낼 수 있다(獬豸, 神羊, 能別曲直)”라고 되어 있다. ≪나비로사여론(羅泌路史餘論)≫ 권 4 <해치편(解廌篇)>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전한다. “해치는 신통한 양이다… 치(廌)라는 짐승은 코끼리의 몸에 꼬리와 뿔, 네 개의 발이 있다. ≪소씨연의(蘇氏演義)≫에는 ‘털은 푸른색이고 네 개의 발은 곰과 비슷하다. 천성적으로 충성스럽고 정직해 다투는 것을 보면 잘못한 사람을 들이받고 말싸움하는 것을 들으면 거짓말한 사람을 물어 씹는다. 옛날 신이 이 짐승을 성제(聖帝)에게 바쳤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신이경≫에는 ‘해치는 천성적으로 충성스러워서 나쁜 사람을 보면 들이받고 곤란한 상황을 보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해치는 동북쪽의 변경 가운데에 있는 동물로 감옥의 계단을 동북쪽으로 세운 것도 해치가 그쪽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解廌, 神羊也…廌者, 象獸有尾角及四足. 蘇氏演義亦云, 毛靑, 四足似熊. 性忠直, 見鬪則觸不直, 聞論則咋不正. 古之神人以獻聖帝. 而神異經乃云, 獬廌, 性忠, 見邪則觸之, 困則未止. 東北荒中之獸, 故立獄階東北, 依所在也).” 뿔 하나 달린 동물의 모습인 해치는 중세 유럽의 전설적인 동물인 유니콘(unicorn)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인간을 위협했던 유니콘과는 다르게 해치는 정직함과 충성스러움으로 인간을 도와주는 선량한 존재였다. 해치는 민간에서 친숙하게 여겨진 신비한 동물이었던 만큼 소, 양, 코끼리 등 그 형상에 대한 설도 여러 가지가 동시에 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임법수(任法獸): 법을 관장하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문장 아래에 “지금 어사(御史)들이 법관(法冠)을 등용하면 세속에서는 해치관(獬豸冠)이라고 부른다(今御史用法冠, 俗曰獬豸冠也)”라는 주가 있다.
<<신이경神異經>>, 동방삭 지음, 김지선 편역, 각 95-96쪽, 152-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