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
우리말로 쓴 최초의 노래집
조선은 무엇을 들었나?
1493년 성종은 당대의 음악을 정리해 출판하라 명한다. 성현이 유자광 등과 노랫말을 모으고 당대 음악 이론을 정리한다. 지만지의 천줄읽기는 노랫말을 모아 한국인에게 전한다. 600년 전 우리는 무엇을 부르고 들었을까?
전강 신라의 태평성대 빛나는 태평성대
천하가 태평한 것은 나후(羅侯)의 덕
처용아비여
이로써 사람들이 말을 아끼게 되면
이로써 사람들이 말을 아끼게 되면
부엽 모든 재난이 일시에 소멸하시리로다
중엽 아 아비 모습이여 처용아비 모습이여
부엽 머리에 꽂은 꽃이 많아 무거워 기울어진 머리에
소엽 아 오래 사실 넓으신 이마에
후강 산처럼 길고 성한 눈썹에
연인을 바라보시는 듯 동그란 눈에
부엽 풍덕(風德)이 가득해 우그러진 귀에
중엽 복숭아꽃 같은 붉은 얼굴에
부엽 오향나무의 향기 맡으시어 우묵해진 코에
소엽 아 천금 머금으시어 넓어진 입에
대엽 백옥 유리같이 하얀 이에
사람들 칭찬과 성한 복을 받아 내밀어 나온 턱에
칠보를 둘러 무거워 숙인 어깨에
길경(吉慶)에 감겨 늘어진 소매에
부엽 지혜가 모여 유덕한 가슴에
중엽 복과 지혜가 모두 넉넉해 불룩해진 배에
붉은 띠가 무거워 굽은 허리에
부엽 태평성대를 같이 즐겨 길어진 종아리에
소엽 아 계면조 가락에 맞추어 도는 넓은 발에
전강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바늘도 실도 없이 바늘도 실도 없이
부엽 처용아비를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중엽 많이도 많이도
부엽 십이 제국이 모두 만들어 세워 놓은
소엽 아 처용아비를 많이도 세워 놓았도다
前腔 新羅盛代 昭盛代
天下太平 羅侯德
處容아바
以是人生애 相不語시란
以是人生애 相不語시란
附葉 三災八難이 一時消滅샷다
中葉 어와 아븨 즈여 處容아븨 즈여
附葉 滿頭揷花 계오샤 기울어신 머리예
小葉 아으 壽命長願샤 넙거신 니마해
後腔 山象이슷 어신 눈닙에
愛人相見샤 오어신 누네
附葉 風入盈庭샤 우글어신 귀예
中葉 紅桃花티 븕거신 모야해
附葉 五香 마샤 웅긔어신 고해
小葉 아으 千金 머그샤 어위어신 이베
大葉 白玉琉璃티 여신 닛바래
人讚福盛샤 미나거신 애
七寶 계우샤 숙거신 엇게예
吉慶 계우샤 늘의어신 맷길헤
附葉 설믜 모도와 有德신 가매
中葉 福智俱足샤 브르거신 예
紅鞓 계우샤 굽거신 허리예
附葉 同樂大平샤 길어신 허튀에
小葉 아으 界面 도샤 넙거신 바래
前腔 누고 지어 셰니오 누고 지 셰니오
바늘도 실도 어 바늘도 실도 어
附葉 處容아비 누고 지 셰니오
中葉 마아만 마아만니여
附葉 十二 諸國이 모다 지 셰온
小葉 아으 處容아비 마아만니여
≪악학궤범 천줄읽기≫, <처용가(處容歌)>에서, 성현 엮음, 김명준 옮김, 220∼225쪽
처용가의 일부인가?
≪악학궤범≫에 실린 고려 <처용가>의 앞부분이다. 신라 <처용가>를 기원으로 해서 제의성과 오락성 측면을 확장한 노래다. 특히 여러 처용가 계열 노래를 종합적으로 수용해 궁중 연향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악학궤범은 어떤 책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음악 학술 이론서다. 1493년 성종의 명으로 편찬되었다.
성종은 왜 악서 편찬을 지시했을까?
서문에서는 장악원에 소장된 의궤(儀軌)와 악보가 파손되어 없어지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부족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성종 대에는 주자학적인 예악 사상이 강화되었다. 그에 따라 다른 의례서들과 균형을 맞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제례와 연향의 전범을 수립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조선 시대에 편찬된 주요 악서는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다. 제목대로 ≪악장가사≫가 노래의 가사를 수록했고 ≪시용향악보≫는 노래의 악보를 모은 것이라면, ≪악학궤범≫은 음악 전체의 법도를 다룬 종합 이론서라 할 수 있다. 노래 가사뿐 아니라 정재(呈才), 즉 무용과 악기, 의상, 무대장치, 식순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총 9권이다. 권1은 아악·당악·향악의 음악 이론을 도설(圖說)과 함께 다룬다. 권2에는 악무 연주의 도설이 있고, 권3에는 ≪고려사≫ <악지>에 실린 당악 정재와 속악 정재를 실었다. 권4는 고려로부터 전승된 당악 정재 5종목과 조선 시대에 추가된 당악 정재 9종목을 함께 수록했으며, 권5는 향악 정재 10종목을 수록했다. 권6은 약 45종의 악기와 무의(舞儀)에 쓰던 기물의 도설이 있으며, 권7에 당악기와 향악기에 관한 도설이 있고, 권8에 의물(儀物)·무복(舞服)에 대한 도설이 있다. 권9에는 관복도설(冠服圖說)·처용관복도설(處容冠服圖說)·무동관복도설(舞童冠服圖說)·둑제복(纛祭服)·여기복식도설(女妓服飾圖說) 등을 수록했다.
≪악학궤범 천줄읽기≫는 어떻게 구성했나?
권2, 3, 5의 노래를 간추려 번역했다. 노래를 고를 때는 기존 번역서에서 충분히 다룬 작품과 한국 문학의 범위에서 현저히 거리가 있는 것들은 가급적 제외했으며 ≪악학궤범≫ 이외 다른 도서에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원전에 처음 소개되었거나 원전의 편찬 의도에 가까운 작품은 소개했다.
완역하지 않고 발췌한 이유는?
≪악학궤범≫은 종합 음악서라는 데 의의가 있으나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다. 12음율의 의미와 역사, 해금 만드는 방법과 켜는 법, 각 무용의 소품과 의상 규격 등은 국악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만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다. 국악 전문 지식이 필요한 기술적인 면을 배제하고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문학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
≪악학궤범≫을 문학의 눈으로 보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권2의 <납씨가>는 국문 현토로 되어 있다. 권5의 시용향악정재도의에는 대부분 국문 가사 그대로 실려 있다. 성종 대에 이르면 국문 악장도 권위 있는 문헌에 당당히 기록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최초의 국문 가사인가, 그전의 악서에는 국문 가사가 없었나?
한문 악장만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고려사≫ <악지>에는 대표적인 고려 가요 <동동> <정읍> <처용가> <정과정> 등이 실리지 못했다. ≪악학궤범≫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전해질 수 있었다.
누가 만들었나?
주 편찬자는 성현(成俔)이며, 그와 함께 유자광(柳子光), 신말평(申末平), 박곤(朴棍), 김복근(金福根) 등이 보정(補正)과 편찬에 참여했다.
성현은 누구인가?
1439년에 태어나 1504년에 졸했다.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慵齋)·부휴자(浮休子)·허백당(虛白堂)·국오(菊塢), 시호는 문재(文載)다. 음악 행정과 이론에 해박해 예조판서로서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를 겸하면서 유자광(柳子光) 등과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그 외 시문집인 ≪허백당집≫, 역대 민속 문화 문물을 기록 정리한 ≪용재총화≫, 당대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룬 ≪부휴자담론≫ 등을 남겼다.
독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조선시대 수준 높은 음악 유산을 이해하고 우리가 지향할 문화예술의 세계를 탐색하게 한다.
당신은 누군가?
김명준이다.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