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영화를 바꾼 영화 8/13: 아메리칸 뉴 시네마 <졸업(The Graduate)>
졸업을 해도 내일은 없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은 격동의 시대였다.
저항운동과 청년문화가 물결쳤고,
그 물결은 할리우드의 스크린에도 넘실거렸다.
특히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졸업>은
젊은이들의 반항과 불만과 갈등을 그려냄으로써
기존 할리우드의 가치를 뒤엎는 청년 영화의 전형을 창조했다.
‘졸업’은 했지만 ‘내일’을 모르는 <졸업>의 벤자민.
오늘 우리 청년 세대의 모습이 그 위로 자꾸 오버랩된다.
<졸업(The Graduate)>, 1967년,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연출, 수영장 신(4분 52초).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의 정사를 함축적으로 묘사하는 수영장 장면은 의도적인 점프 컷으로 시공간적 연속성을 파괴하는 편집과 정교한 미장센을 통해 영화적으로 표현된다. 이 장면은 현재 시제로는 벤자민이 잠시 자기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수영장에 나간다는 상황이지만, 영화적 시공간의 비약을 통해 두 사람의 정사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운 벤자민이 로빈슨 부인과의 향락을 나누는 것은 그가 수영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노래 가사는 장면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슬픈 멜로디는 로빈슨 부인의 육체적 노예가 되어 가는 벤자민의 애처로운 상황을 간접적으로 풍자하면서 이미지 사이의 간격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소리 없는 절규
<졸업>은 불안한 미래를 앞둔 주인공 벤자민(더스틴 호프먼)의 방황을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작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등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가 낙오자들을 내세워 반영웅적인 일탈을 통해 젊은이들의 심정을 대변했다면 이 영화는 동시대의 보편적인 젊은이들, 혹은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물질적, 육체적 욕망에 충실한 기성세대의 속물근성이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주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이크 니콜스가 호프만에게 연기를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인물을 표현하도록 연출한 것은 영화사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전혀 연기 같지 않은 벤의 어색한 태도는 이 영화에 정서적 호소력을 부여한다. 당시 인기 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를 삽입한 것은 영화의 상업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다른 어떤 영화보다 청년문화의 감수성을 직접적이고 동조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감독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몇몇 신곡(‘Mrs. Robinson’)에 이미 젊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던 기존곡(‘Sound of Silence’, ‘Scarborough Fair’)을 더해 사운드트랙을 보충한 점이다. 이 효과적인 방식은 이후 수많은 영화 음악에 미학적, 상업적 영향을 미쳤다.
– 신강호 대진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