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반란의 시대” 17세기 러시아 문학
러시아 역사와 문화사에서 17세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당시 여러 사건들과 소요들은 17세기 러시아의 문화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대규모로 전개된 민중 반란과 사회적 갈등은 사회 발전의 모순을 보여 주었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러시아 역사에서 농민층이 큰 세력으로 등장했으나, 가혹한 농노제의 착취로 농민들은 극단적인 경제적 빈곤에 처하게 되었다. 더불어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 즉 교회와 세속 권력 간의 갈등, 교회를 분열시킨 교회 내부의 투쟁들과 계층적 이해관계를 들고 나온 상인들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사건들도 많이 나타났다.
17세기 문화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는 문화의 세속화로서, 러시아 문화에서 민주적 경향이 성장함으로써 교회의 정신적 독재에서 해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세적 삶의 가치가 강화되었고,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개인적인 운명과 사건들에서 인간의 역할이 강조되었으며, 인간의 적극적인 활동의 의미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들이 문학작품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문학예술에서 민중적 요소들의 역할이 확장됨으로써 민중 문화가 지배계급의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 또한 강화되었다.
17세기 러시아는 경제적·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할 필요성 때문에 유럽 국가들이 성취한 업적을 이용하자는 요구가 생겨났다. 종교적 세계관에 뿌리를 둔 지배적인 중세 문화와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새로운 문화 현상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회는 국가권력에 복종하면서 세속적인 지식의 확산을 방해했고, 모든 새로운 것들, 특히 서구 문화에 적대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세속적인 경향과 봉건적인 교회의 투쟁은 17세기 러시아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중심적 주제가 되고, 러시아 문화의 세속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17세기에, 민중은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새로운 길에 들어선 러시아 문학을 쇄신하고 부흥시켰다. 특히 러시아의 문화와 문학은 세속적인 내용과 형식들을 작품에 가미함으로써 훨씬 더 풍부해졌다. 외국문화와 문학의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터득하고 수용했다. 그동안 기록문학에 참여하지 못했던 하급 계층도 민중 언어와 일상생활의 내용으로 문학 전통을 만들어 문학의 세속화를 가속화했다. 이때 러시아 문학에는 세속적인 장르인 풍자문학과 일상 이야기와 역사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신구(新舊)의 대립을 보여 주었다. 공식 문화의 권위와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민중 문화(비공식 문화)를 보여 주었다.
풍자문학과 웃음 문학의 시대
17세기 러시아 문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해 온 연구가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텍스트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조하는 견해, 텍스트의 문예학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견해다.
소비에트 시대의 학자들은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킨 러시아인들의 민중 의식의 뿌리가 역사적으로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강조하며 작품의 민중성과 혁명성을 선전했다. 이런 관점을 지닌 대표적인 소비에트 학자는 아드리아노바 페렛츠(Адрианова-Перетц)다. 그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파악해 17세기 문학의 일부를 “민주 풍자(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сатира)”로 규정했다.
17세기 문학작품들의 성격을 문예학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가들은 “민주 풍자” 대신에 “웃음 문학(смеховая литература)”, 또는 “민중적 웃음 문학(народная смеховая литератур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바흐친, 리하초프, 그리고 판첸코 등이 있다. 그들이 제기한 웃음 문학이란 웃음 문화의 바탕에서 자라난 독자들을 웃기기 위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17세기는 풍자문학과 웃음 문학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다수의 풍자들은 웃음 문학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웃음을 자아내는 풍자문학은 시대의 세속화(통속화)와 맞물려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급격히 부상했다. 전반적으로 17세기는 “웃음에 대한 중세 문화적 금지의 철폐와 웃음의 폭발적인 해방” 시기로 특징지어진다. 이 시대에 풍자문학과 웃음 문학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민중들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 주는 문학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200자평
러시아 17세기는 “웃음에 대한 중세 문화적 금지의 철폐와 웃음의 폭발적인 해방” 시기로 특징지어진다. 당시 러시아에서 풍자문학은 시대의 세속화와 맞물려, 민중들의 새로운 가치관인 민주성과 혁명성을 보여 주는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되었다. 러시아 민족사의 흐름과 삶의 특수성을 이해하면서, 공식 문화의 규범을 뒤집어 창조한 웃음 문화의 시학을 이해해 본다.
옮긴이
조주관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OSU)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시간 철학(Time Philosophy in Derzhavin’s Poetics)>이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학술위원을 역임하고, 2000년 2월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바로크적 세계관과 토포이 문제>(교과부장관상 수상)가 있고, 대표 저서로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러시아 시 강의≫,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 ≪고대 러시아문학의 시학≫(문광부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러시아 현대비평 이론≫, ≪시의 이해와 분석≫, ≪주인공 없는 서사시≫, ≪자살하고픈 슬픔: 안나 아흐마또바 시선집≫,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검찰관≫, ≪루슬란과 류드밀라≫, ≪타라스 불바≫, ≪중세 러시아 문학(11∼15세기)≫, ≪16세기 러시아 문학≫, ≪17세기 러시아 문학≫, ≪17세기 러시아 풍자문학≫, ≪참칭자 드미트리≫, ≪노브고로드의 바딤≫ 등이 있다. 현재 18세기 러시아 문학 시리즈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차례
셰먀카 재판 이야기
요르시 요르쇼비치 이야기
적에게 보내는 공손한 서한
칼랴진 탄원서
카르프 수툴로프 이야기
사바 사제의 이야기
농부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
주정뱅이 이야기
주점에서의 예배
포마와 예료마 이야기
수탉과 여우 이야기
헐벗고 가난한 자의 알파벳 입문서
부유한 삶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
외국인을 위한 치료서
지참금 목록
질투심 많은 남편들에 관한 이야기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우는 수탉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악하고 교활한 꾀를 써서 그를 잡을 수 있을까,
수탉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주 상냥하면서도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