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온 여인
이방인: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엘리다가 나와 함께하길 원한다면, 그저 그녀의 자유의지대로 가면 되는 거죠.
엘리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른다.) 내 자유의지…!
방엘: 당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엘리다: (혼잣말로) 내 자유의지라고…!
방엘: 당신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시오! 당신이랑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소.
이방인: (시계를 들여다보며) 배로 돌아갈 시간이군. (한 걸음 다가가며) 자, 자, 엘리다… 이제 난 내 할 일을 다 했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며) 난 당신과 한 약속을 지켰어.
엘리다: (뒤로 물러나며 애원한다.) 아,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이방인: 그럼, 내일 밤까지 생각할 시간을 주겠어…
방엘: 여기 생각할 거 따윈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떠날 생각이나 하는 게 좋을 거요!
이방인: (여전히 엘리다에게) 난 배를 타고 협만에 나가 있을 거야. 내일 밤 다시 오리다. 당신을 만나러 오겠어. 당신은 여기 정원에서 날 기다리면 돼. 이 문제에 관한 한 당신하고 나, 단둘이서 해결하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 거요.
엘리다: (몸을 떨면서 낮은 목소리로) 오, 여보. 당신 지금 저 얘기 들으셨죠!
방엘: 진정해요! 다시 오지 못하도록 우리가 막으면 되니까.
이방인: 잘 있어요, 엘리다, 내일 밤에 봅시다.
≪바다에서 온 여인≫, 헨리크 입센 지음, 조태준 옮김, 105∼106쪽
방엘과 엘리다는 어떤 사이인가?
부부다. 아내가 죽자 방엘은 두 딸에게 새어머니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엘리다에게 청혼했다. 엘리다는 평생 부양하겠다는 말을 듣고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들 앞에 나타난 이방인은 누구인가?
과거에 엘리다의 연인이었던 선원이다. 엘리다에게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무엇을 약속했나?
각자 끼고 있던 반지를 열쇠고리에 엮어 바다에 던졌다. 영원히 부부가 되기로 했다.
어째서 헤어진 것인가?
선원은 선장을 살해한 뒤 쫓겨 달아나던 참이었다. 떠나기 직전에 엘리다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 것이다.
엘리다는 왜 그를 기다리지 않았나?
그가 떠난 뒤 정신을 차렸다. 모든 게 미친 짓, 터무니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고 선원에게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냈다.
그의 반응은?
냉정하고 차분했다.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다시 한 번 편지를 받고 답장했지만 헤어지자는 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완전히 헤어진 게 아닌가?
그가 편지를 세 통이나 더 보냈지만 엘리다는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답장하지 않았다. 이후로 소식이 끊겼지만 엘리다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3년 전부터 그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받는다.
방엘은 아내의 불안을 몰랐나?
어렴풋이 느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엘리다에게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이방인이 나타난다. 그를 경계하면서도 아내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방인은 다음 날 다시 오나?
온다. 엘리다가 자유의지에 따라 떠날지 남을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엘리다의 선택은?
그의 말에 흔들린다. 자신이 바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방엘이 순순히 보내 주나?
처음엔 엘리다의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곧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놓아주기로 한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나?
그녀는 낯선 곳에서 그의 딸들과 새 가족을 이루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방치했다. 결국 그녀는 집에서 소외당했다. 당장 떠난다고 해도 그녀를 붙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엘리다는 떠나나?
떠날지 남을지가 자기 의지에 달렸다는 걸 알고 주저 없이 남기로 결정한다. 이방인은 그녀를 단념한다.
왜 다시 남겠다는 것인가?
그동안 그녀를 괴롭혀 온 바다와 이방인에 대한 끌림은 바로 그녀 내부에서 자라난 자유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유의지에 따라 가족들 곁에 뿌리내리겠다고 다짐한다.
헨리크 입센은 누구인가?
서구 연극사에서 근대연극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특유의 시대의식과 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근대극을 확립했고 이를 기저로 근대사상과 여성해방을 비롯한 사회개혁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는 <인형의 집>, <유령>, <들오리>가 있다.
<바다에서 온 여인>은 어떤 작품인가?
입센이 뮌헨에 체류하던 1888년, 만 60세에 발표한 희곡이다. <인형의 집> 이후 입센 드라마에서 중요한 주제였던 결혼과 가정 문제가 변주된다. 안데르센 동화 <인어 공주>나 푸케의 소설 <운디네>와 마찬가지로 물의 요정 전설이 모티프가 되었다. 1889년 노르웨이와 독일에서 동시에 초연되었다.
초연 반응은 어땠나?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상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어떤 점이 부적합한가?
입센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이 작품도 무대 이미지 구축이 쉽지 않았다. 다의적인 상징을 포착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모호한 상징주의 사이에서 균형 있는 연기를 펼칠 만한 여배우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오늘날 부단히 무대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품에 내재된 강력한 미학과 표현 가능성 덕분이다. 연극 외에도 무용, 오페라, 라디오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현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태준이다. 배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이며, 연출가이자 극작가이기도 하다.
2833호 | 2015년 12월 28일 발행
입센, 자유에 대한 자유의지
조태준이 옮긴 헨리크 입센(Henrik J. Ibsen)의 ≪바다에서 온 여인(Fruen fra hav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