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하는 천사
2532호 | 2015년 4월 9일 발행
방랑하는 천사의 집
조원규가 옮긴 안겔루스 질레지우스(Angelus Silesius)의 ≪방랑하는 천사(Der Cherubinische Wandersmann)≫
기독교 신비주의
내가 죽고 신이 나의 생명이 되면?
나는 신이 된다.
죽음의 장소는?
순수한 무, 비장소의 장소 곧 사막이다.
세속과 육체의 모든 것이 사라진 시간, 인간의 본질이 나타난다.
그것은 신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신도 넘어서 가야 한다
내 머물 곳은 어디인가, 나도 없고 그대도 없는 그곳은?
내가 가야 할 마지막 종착지는 어디인가,
아무것도 없는 그곳은? 그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신을 넘어서 사막으로 가야 한다.
≪방랑하는 천사≫,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지음, 조원규 옮김, 9쪽
사막에 무엇이 있는가?
신이 있다. ‘나’는 신을 찾아 사막을 향한다.
‘나’는 누구인가?
방랑하는 천사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랑하고 편력하는 케루빔 천사와도 같은 사람(Der Cherubinische Wandersmann)’이다.
케루빔 천사와 같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특별한 인식의 힘으로 신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케루빔은 ‘지품천사(智品天使)’라고도 한다. 최고의 인식을 대변하는 상급 천사다.
사막은 무엇을 은유하나?
순수한 무(無)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손쉬운 신의 형상 너머에 있다. 그러니까 신에 관한 형상성조차 무화하고 초월한 곳, 어떤 장소도 아닌 ‘비장소(Nicht-Ort)’다.
순수한 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신을 남김없이 알고 신과 하나가 되어 영혼의 평정을 얻는 길이다.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질레지우스는 “그대가 죽고 신이 그대의 생명이 되면/ 비로소 그대는 드높은 신들의 반열에 들리”라 했다. 자기를 부정하고 죽음으로써 새로운 자아가 탄생한다. 이 자아만이 신 안에서 신과 함께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버리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인간이여, 본질이 되어라. 세상이 스러지면/ 우연은 떨어져 나가고 본질만이 남게 되니”라고 말한다. 신을 통해 인간을 찾는 것이다.
인간이 본질이 되는 방법이 뭔가?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자아를 버림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질레지우스는 인간의 본질이 신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그렇다. 질레지우스는 인간 중심주의의 절정에 서 있다.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누구인가?
17세기 독일 기독교 신비주의 신학자이자 의사, 시인이다. 원래 이름은 요한네스 셰플러(Johannes Scheffler)로 개신교도였으나 1653년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개명했다. ‘Angelus Silesius’는 슐레지엔에서 온 천사라는 뜻이다. 1657년에 5부로 된 ≪방랑하는 천사≫를 출간했고, 1675년에 6부를 추가해서 재출간했다.
≪방랑하는 천사≫는 어떤 책인가?
처음에는 ≪촌철(寸鐵) 격언시(Geistreiche Sinn−und Schlußreime)≫라고 불렀다. 총 1675편의 경구(警句)로 된 시집이다. 독자가 “자기의 마음에서 숨은 신과 그분의 지혜를 스스로 찾아 나서도록, 그리하여 마침내는 두 눈으로 직접 그분의 얼굴을 보도록 고무하”기 위해 썼다.
숨은 신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가 뭔가?
14세기 흑사병 유행 이후 독일 민중은 질병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구교가 갈등하고 왕가들은 패권을 다투었다. 민중의 삶은 더없이 피폐해졌다. 절망한 인간에게 자비로운 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종교는 어디 있었나?
가톨릭은 부패해 신망을 잃었다. 신교도 공인 후에는 교조화했다. 종교 개혁의 변질에 환멸한 이들은 진정한 신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는?
가톨릭에서 반(反)종교 개혁 자정(自淨) 운동이 일어났다. 신비주의자들은 세속의 위계질서와 교회의 교리에서 벗어나 신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종교의 자정이 신비주의인가?
이 책은 유럽의 기독교 신비주의의 진면목을 전달한다. 신비주의가 근대 계몽주의 이전의 무지몽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시대를 관통해 초월과 평정을 갈구하는 지극히 인간다운 소망의 표현이다.
오늘 한국 기독교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인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이 폭력과 이기심에 물들어 깊은 회의와 비판에 직면했다. 이 책은 제도나 기구로 안착한 종교의 울타리 너머에서 신과 올바르게 만나려 했던 강렬한 영혼의 몸짓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원규다. 서강대학교에서 독일문학과 문예창작을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