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군상
노벨문학상 3 사지원이 옮긴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여인과 군상(Gruppenbild mit Dame) 천줄읽기≫
전쟁과 남성의 오류
힘을 믿는다. 우월한 인간을 꿈꾼다. 영웅을 신봉하고 명령을 수행하고 사랑과 자비를 비웃는다. 전쟁을 시작하고 모두 그곳에서 죽는다. 부활은 오직 여성의 일이다.
예쁜 옷을 입고 가게의 전면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차가운 뒷방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거기서 화환과 꽃다발을 엮었습니다. 더 멀리, 더 높이 오르려는 명예욕이 없었습니다. 명예욕은 전혀 없었던 겁니다.
≪여인과 군상 천줄읽기≫,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89쪽
그녀는 누구인가?
레니 파이퍼다. 48세의 독일 여자다. 비인간적 자본주의사회의 가치를 거부하고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순수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4년간의 초등교육 과정을 마칠 때까지 두 번이나 자의로 유급했다.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는 경직된 제도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사회에서 소외받는 남자들을 사랑했고, 어려운 이들을 돕느라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누구인가?
첫사랑은 사촌 에르하르트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무기를 팔다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독일군 하사관이었던 알로이스 파이퍼와 만난 지 사흘 만에 결혼했다. 결혼식을 올린 날 그는 떠났고 전사했다. 화원에서 일할 때는 소련군 포로 보리스 리보비치 콜톱스키와 위험한 사랑을 했다.
소련군 포로와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레니가 휴식 시간에 보리스에게 커피 한 잔을 준 일에서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치였던 크렘프가 의족으로 보리스의 팔을 치고 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고등 인간” 레니가 “하등 인간” 보리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레니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잔을 씻은 뒤 다시 그에게 커피를 주었다. 그 뒤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그녀는 레프를 낳았다.
보리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느 날 저녁 미군 헌병대에 끌려갔다. 호주머니에 독일군 증명서가 있었기 때문에 위험에 빠졌다. 미군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로트링겐의 탄광으로 팔려 갔다. 레니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그를 찾아냈다. 어느 공동묘지의 무덤에 있었다.
레니는 이제 어떻게 사는가?
보리스에게 면도날, 비누, 초콜릿, 포도주 등 사치품을 제공하느라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집을 팔았다. 전쟁미망인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전차인들을 값싼 방세로 살게 하고 그들의 아이를 돌봐 주느라 집세를 몇 달째 밀렸다. 퇴거 명령을 받았다.
그녀는 혼자인가?
그녀를 돕기 위해 결성된 ‘곤궁에 처한 레니를 돕기 위한 후원회’가 결성된다.
누가 만든 후원회인가?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에 맞선 단체다. 레니의 전차인들, 화원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친구, 지인 등 열두 명이 만들었다.
그들은 레니를 어떻게 돕는가?
아침 7시 반에 퇴거 집행이 있을 예정이었다. 집행을 연기하기 위해 후원회는 쓰레기차로 사고를 내 진입 도로를 봉쇄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놓아 체납금을 지불했다. 강제 퇴거 집행은 취소되었다.
≪여인과 군상≫에서 레니가 주인공인 이유가 뭔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하인리히 뵐은 남성들에게 있는 우월성과 파괴성을 확인했다. 남성의 폭력성, 무력한 인간의 공포, 처참한 죽음을 보면서 그들의 행위가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반면 여성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와 상실감에 빠진 남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도록 보살폈다.
남성과 여성의 충돌인가?
아니다. 차별이 없이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으며 화합하는 사회 건설을 꿈꿨다.
하인리히 뵐은 누구인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문학 작품뿐 아니라 몸으로 행동한 작가다.
어떻게 살다 갔는가?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났다. 1939년 쾰른대학교 독문학과 입학 직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징집되었다. 전후 ‘전쟁에서 본 것’과 ‘전후의 폐허’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1949년 첫 소설 ≪열차는 정확했다≫를 출간한 뒤 1953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1971년에 ≪여인과 군상≫을 발표하고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말부터 대안 사회를 위한 평화 운동과 환경 운동을 펼쳤다.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후 ‘쾰른 문학상’은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칭되었고,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의 광장도 그의 이름을 땄으며, 독일의 학교 열세 곳에는 하인리히 뵐의 이름이 붙었다.
이 책은 원전에서 얼마나 어떻게 뽑아 옮겼나?
장별로 주요 내용을 뽑아 20%를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사지원이다.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