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사운드 연구, 한국 소리 신간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기막히면 징소리
한국인의 소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쇠북소리는 영혼을 위로하고 징소리는 희로애락을 풀어주고 풍물은 너와 나를 만나게 한다. 막힌 기를 뚫어 인간 육신과 영혼을 편케 한다. 기가 막히면 징을 친다. 소리가 하늘에 닿는 순간 희로애락은 생명의 에너지가 된다.
소리 커뮤니케이션?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목소리와 악기 울림 따위의 가청성 소재, 곧 소리를 매개로 메시지를 교환하는 인간 상호작용이다.
모든 소리가 커뮤니케이션인가?
그렇지 않다. 두 사람 이상이 교환하는 의미 표현체 또는 자극으로서 소리 메시지를 서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인위적 소리로 제한된다. 자연 소리와 도시 소음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누가 연구하나?
소리 창조자로서 커뮤니케이터, 예컨대 작곡가, 작사자, 연주자, 연행자 등을 연구하는 학자는 있지만, 소리 매체가 작동하고 메시지와 수용자가 포함된 소리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는 거의 없다.
연구하지 않는 이유는?
소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녹음기술 발명 전에는 소리 현장에서만 인지될 수 있었다. 소리 녹취와 분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리 커뮤니케이션은 연구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쉽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소리를 연구하나?
과거 문인과 학자들이 소리의 현장에서 인식하고 느낀 기록과 필자가 직접 느낀 직관적 소리 메시지를 분석한다.
기존 연구 방법과의 차이는?
지금까지의 소리 연구는 커뮤니케이터로서 소리 창조자의 작품과 그 해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리 매체에 담겨 운반되는 의미 표현체인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느끼는 수용자의 인식과 감정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소리 메시지 연구에 천착한 이유는?
청각 메시지로서 소리 메시지는 인간의 생존과 공동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원초적, 근본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음파를 타고 전달·수용되는 소리 메시지는 문서 같은 시각 메시지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나는 듣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독일의 소리 연구자 세게베르크의 명제다. 소리 메시지 연구에 큰 자극이 되었다.
어떤 소리를 연구하나?
영혼의 소리로서 쇠북소리, 하늘을 향한 소리로서 징소리, 대동신명의 소리로서 풍물, 민중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소리로서 민요, 정교한 실내 독주음악으로서 산조, 마당과 장터의 소리로서 판소리, 커뮤니케이터와 수용자의 역할 전환이 일어남으로써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는 노래방의 소리로서 유행가를 연구했다.
너무 산만하지 않은가?
다양한 장르의 소리예술을 다룸으로써 우리 민중의 소리 커뮤니케이션에 입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우리 소리의 본질은?
우리 민중의 소리는 기막힘, 곧 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 소리예술(음악)의 기능은 기(氣)가 막힘을 뚫어 주는 기화(氣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연구 방법을 사용하는가?
기화와 관련, 조선 후기의 사상가 혜강 최한기의 『기학』과 『신기통』은 ‘음악기학’으로 확장 해석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전체적으로 기화를 설명할 수 있는 최한기의 ‘음악기학’, 비언어적 소리 커뮤니케이션을 해석하기 위해 미드의 ‘상징적 상호작용주의’ 이론과 프로스의 매체이론, 소리예술의 감각적 인지와 관련해서는 헤겔의 ‘미학’, 그리고 수용자가 음파를 온몸으로 견디며 체험하는 감정이입을 설명하는 데 플루서의 ‘음악청취 이론’ 그리고 판소리의 종합적 소리예술을 해석하는 데 ‘상호매체성 이론’이 방법론으로 사용된다.
언론학 분야에서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어떤 수준인가?
연구 결과의 축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동서양의 이론을 혼합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 연구를 평가하는 학자들로부터 “우리의 소리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데 왜 서양의 이론을 적용하는가?”라는 질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토착 이론의 부족으로 필자는 이 연구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감수해야 했지만, 동서양 이론의 비판적 적용의 길도 열어 놓았다.
쇠북소리 곧 종소리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에밀레종 소리의 은은한 맥놀이 현상을 알고 있다. 이 쇠북소리는 도시와 사찰에서는 시간을 알리는 신호로 작동하지만, 이승에서 죄를 지은 중생의 영혼을 저승에서 구원하는 소리로도 기능한다. 또한 쇠북소리는 생사가 엇갈리는 전장에서 병사들을 엄습하는 극도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상처 받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고 희망을 주는 깊고도 그윽한 소리다.
서양 종소리와 뭐가 다른가?
서양의 종소리에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윽한 맥놀이 현상이 거의 없다. 교회와 학교에서 집회와 해산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서양의 종소리가 우리의 쇠북소리처럼 인간의 영혼을 달래주고 구원하는 메시지로 작용한다는 연구나 가설은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징소리 메시지는?
인간과 천신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한다. 징소리는 한국인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풀지 못하는 한 또는 주자가 말한 오성, 곧 기쁨, 분노, 욕심, 두려움 그리고 슬픔의 감정을 하늘에 있는 천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화하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풍물이 현대의 광장에서도 소통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민족혼 말살 정책으로 풍물은 농민들의 ‘농악’으로 폄하되었다. 군사정권이 주도했던 산업화 시대에는 미신으로 평가절하되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대학생들이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 수단으로서 굿판을 만들기 위해 ‘풍물패’라는 동아리를 조직해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했다.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민족놀이문화로 부활했다.
풍물이 정보시대에 부활하는 이유는?
한국인이 타인을 보고 자신을 보여 주는 각종 집회 행사에서 집단신명과 대동단결을 이끌어 내는 직접적인 소리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가 한창일 때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집단적인 신명의 흐름을 공유하기 위해 안방을 뛰쳐나와 광장과 길거리로 모여들어 풍물을 연행했다.
민요는 어떤가?
우리의 고유한 소리 커뮤니케이션 현상인 민요는 일제강점기 이후 중단되었다. 그후 100여 년 동안 일본식 엔카류의 유행가와 미국계 팝송을 모방한 유행 음악이 대중음악을 지배했다. 민족음악이 단절되었고 민요가 대중사회의 정서적 대화를 통한 소통 구조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민요와 유행가 연구에서 가사 해석에 집중한 이유는?
민요와 유행가 연구는 가사를 주로 해석하는 언어적 메시지 연구에 집중했다. 민요의 가락과 장단이 기록된 악보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유행가 악보는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판소리가 오페라처럼 세계 문화로 확산되려면?
구전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판소리 악보 작업이 전제조건이다. 미래 청중을 위한 창극이나 새로운 판소리의 창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창법의 문제는?
전문성과 난해성, 계면 위주의 전승 과정 역시 구전의 한계에서 유래한다. 시대 상황에 적응하는 변용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가 요구되지 않는가?
소리 커뮤니케이션에서 구현되는 구비문학과 음악의 결합, 음성으로 무대장치를 대신하여 장면을 묘사하는 청각의 원근법, 청중의 능동적인 참여로서 추임새와 같은 판소리 고유의 상호 매체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 소리 커뮤니케이션의 보편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한이라고 할 수 있는 기막힘을 풀어주는 기화의 메시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희로애락의 메시지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를 꼽으라면?
우리 민족의 한을 가락과 장단으로 맺고 푸는 판소리와, 가사 없는 판소리라 불리는 산조를 들고 싶다.
당신의 애청 소리는?
평안도 서부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김을 매며 긴 호흡으로 불렀던 민요 <긴아리>다. 한 사람이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다.
“여울에 차돌은 야 부딪혀 희고 / 이내몸 시달려 머리털 희다
바람새 좋다고 야 돛달지 말고 / 포구로 들렸다 가게나
세월을 잊자고 야 산중에 / 역세(曆歲)나 대신에 단풍이 든다
– 아이고 아이고 성화 났구나 –
일하던 오금에 잠이나 자지 / 재 넘어 털털 뭘 하러 왔습나
저녁을 먹고서 썩나서니 / 게묻은 손으로 날 오래누나
뒷문두 밖에야 실알이 타래 / 바람만 불어도 날 속이누나
연분홍 저고리 남길소매 / 너업기 좋고 나보기 좋구나.”
섹시하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인 노화를 이 노래를 통해 여유롭게 극복하고, 낮이면 부딪혀야 하는 노동의 고통을 밤이 찾아들자 은밀하고 강렬한 남녀상열지사로 승화시키는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연구 계획은?
소리예술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감정(감성)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조선 후기의 사상가 혜강 최한기의 『기학』에서 체계화된 사회적 행위이론과, 구조-기능주의적 체계이론의 창안자인 미국의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의 사회적 행위이론을 비교·분석할 계획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성재다.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