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명대사 유정(惟政)은 조선 중기인 임진왜란 전후 시기를 살다간 고승이요, 왜적과 싸우고 담판하여 국토를 지키고 수많은 포로를 쇄환(刷還)한 승병장이며, 경륜 높은 경세가(經世家)요, 또한 발군의 시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유정이 남긴 시문집인 ≪사명당집(四溟堂集)≫을 통해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
≪사명당집≫을 통해 살필 수 있는 사명유정의 삶과 문학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크게 두 부분, 즉 경세가로서의 면모와 시 세계의 특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당대인들의 평가와 경세가로서의 면모다.
사명당이 유가 문사들과 본격적으로 교유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되던 해 선과에 급제하여 서울에 머물면서부터다. 숭유억불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그가 교유한 인물의 수나 비중은 놀라울 정도다. 특히 그가 선과에 급제한 뒤 15년간의 서울 생활에서 인연을 맺은 인물들과 동호사(東湖寺)에서 만나 시와 우정을 나누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대사가 지은 수많은 글을 시문집으로 엮은 것이 문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기도 했다. 그는 동호사를 중심으로 유불의 경계를 뛰어넘어 시회(詩會)의 일원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조 억불의 이론적 근거 중 가장 큰 것은 인륜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가정과 국가의 일원이라는 사회 존속의 중요한 고리를 끊고 개인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 해서 승려들은 극심한 배척과 천시를 받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극복의 한 축을 승려 집단이 감당함으로써 이런 논리는 현실적 힘을 잃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임란기 승병들의 활동, 특히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과 같은 인물의 행적은 조선 불교사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명분과 실천의 양 측면에서 고귀한 성과를 거둔 것이 바로 임란기 승병의 활동인 것이다. 대사의 경세가로서의 모습은 크게 인재 등용과 자주국방 시책, 그리고 지방 관원들의 바른 정사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사명당이 남긴 시 세계의 주제 의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참담한 현실 묘사를 들 수 있다. 스님의 임란 참전은 왜적의 침입과 무능력한 위정자들로 말미암아 도탄에 빠진 백성에 대한 긍휼과 애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음은 귀향 의식의 표백이 드러난 부분이다. 유정이 남긴 한시 중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향 의식이 중심 정조가 되는 작품들이다. 이때 고향은 태어난 고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기실 출가 수도승이 본래 있어야 할 공문(空門)의 본분 자리, 곧 수행 정진의 세계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선시를 통한 자각의 교시다. 우리는 사물의 허상에 사로잡혀 본뜻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것은 그 허상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실상이라 여기는 데 있다. 사명대사는 일주 선자로 대변되는 수도자들에게 분별심을 끊고 제 마음자리를 찾으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200자평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승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명당 유정. 총 7권에 달하는 문집 중 그의 삶을 조망하는 91편의 작품을 가려 뽑았다. 이 문집에는 임진왜란의 참혹상과 나라를 위해 싸웠던 승병들의 의기가 서려 있으며, 참된 禪을 위한 정진이 담겨져 있다. 특히 시 가운데에는 다른 승려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시풍도 엿보여 문집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지은이
유정(惟政, 1544∼1610). 속성은 임(任)씨고,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이환(離幻)이고,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종봉(鍾峯)이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다. 유정은 법명이고, 경남 밀양(密陽) 출생이다. 1556년 직지사(直指寺)의 신묵(信黙)을 찾아 승려가 되었다. 1561년 승과(僧科)에 급제하고, 묘향산 휴정(休靜西山大師)의 법을 이어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 휴정의 휘하로 들어갔다. 이듬해 승군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평양을 수복하고 권율(權慄)과 의령(宜寧)에서 왜군을 격파했다. 1594년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진중을 세 차례 방문, 화의 담판을 하면서 적정을 살폈다. 1604년 국왕의 친서를 갖고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초서를 잘 썼으며 밀양의 표충사(表忠祠), 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사명당집≫과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등이 있다.
옮긴이
배규범은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한국학 및 불가 한문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 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희대(학진연구교수), 동국대(학진연구교수),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KF객원교수)을 거쳐 현재 중국 북경공업대학 한국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라는 새로운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잡체시 연구≫,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문학사≫, ≪속담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300≫ 등이 있고,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사명당집≫, ≪허정집≫, ≪허응당집≫, ≪청허당집≫, ≪무의자 시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집≫, ≪초의시고≫ 등이 있다.
차례
시월 초사흘 눈 내리는 날에 十月初三日雨雪寫懷····3
동해사 東海辭···················4
추풍사 秋風辭···················6
송암 스님에게 贈松庵···············8
화축에 쓰다 題畫軸················9
낙동강 아래에서 병들어 누워 서애 유 상공에게 올리다 洛下臥病上西厓相公················10
복주성 누대에서 자며 宿福州城樓··········12
욱 스님을 전송하며 送昱師還海西山·········14
정 생원의 시운을 빌려 次鄭生員韻·········16
악양강 어귀에 배를 대고 고운의 옛 자취를 찾으며 泊岳陽江口訪孤雲舊跡·················18
동화사 상방에서 밤 종소리 들으며 桐華寺上房聞分夜鐘21
고향을 그리며 望鄕················23
영남 금오산 아래에서 병들어 누웠다가 재주 많던 운중 스님을 그리며 嶺南金鳥下臥病憶雲中才調·······24
원적암 圓寂庵··················26
소릉의 시운을 빌려 次少陵韻············28
부질없이 쓰다 謾書················29
허 사인의 시운을 빌려 次許舍人韻·········31
임인년(1602) 가을, 남관묘에 머무르며 壬寅秋留南關廟·······················33
진천을 지나며 過震川···············35
서쪽에서 놀면서 최고죽 어른께 올리다 西遊奉崔孤竹·37
서울의 여러 재상께 도해시를 청하며 謹奉洛中諸大宰乞渡海詩······················39
강선정 題降仙亭·················41
기축년 횡액으로 역옥에 걸려 己丑橫罹逆獄·····43
계미년(1583) 가을, 관서로 가는 도중에 癸未秋關西途中44
하양으로 가는 도중 찬공의 선방을 떠올리며 河陽途中憶寄瓉公禪室···················46
진헐대 眞歇臺··················47
녹문의 긴 강에서 여러 문하들과 헤어지며 鹿門長川別門下諸公·····················48
반야사에 자며 宿般若寺··············49
고향에 돌아와서 歸鄕···············50
밤에 신라의 옛 여관에 앉아 新羅故館夜坐······51
임진년(1592) 10월, 의승군을 이끌고 상원을 건너며 壬辰十月領義僧渡祥原················52
기해년(1599) 겨울, 단양으로 가는 도중 전마가 죽어서 己亥冬丹陽途中斃戰馬···············53
혜윤 스님의 시축에다 쓰다 題惠允軸········54
허생에게 贈許生·················55
명사로 가는 길에 鳴沙行··············56
산중에서 山中··················57
체포되어 강릉에 와서 擒下江陵···········58
기 수재에게 회문시를 지어 보내며 回文贈奇秀才二首·59
의지·조신·선소 스님에게 贈義智調信仙巢·····61
가을날 청학동에 앉아 靑鶴洞秋坐··········62
한 장로에게 贈閑長老···············63
게송을 구하는 원 사미에게 贈圓沙彌求頌······64
갈대 한 잎으로 강을 건너다 一葦渡江········65
일본 스님에게 贈日大師··············66
정응 스님에게 贈正凝禪子·············67
혜응 스님에게 贈惠凝禪子·············69
순 스님에게 贈淳長老···············71
일본에 있을 때 어떤 왜인이 신농씨가 온갖 풀 맛을 보는 화상을 가지고 와 찬을 구하기에 在日本有倭持神農嘗百草畵像求讚書之··················74
일본 승려 원광·원길에게 드리는 글 贈日本僧圓光元佶書76
숙로 선사에게 올리는 글 贈宿蘆禪師書·······78
단양 객관에서의 밤 회포 丹陽傳舍夜懷·······79
죽령을 넘으며 踰竹嶺··············81
김해 객관에서의 밤 회포 金海傳舍夜懷·······82
죽도에 있을 때 한 늙은 유생이 산승이 쉬지 않는다고 조롱하기에 거기에 답하며 在竹島有一儒老譏山僧不得停息以拙謝之·····················83
부산 앞바다 釜山大洋··············85
대마도 해안 포구에 이르러 배 안에서 到馬島海岸浦舟中作·······················87
대마도 객관에서 왼쪽 둘째 이가 까닭도 없이 아파 베개에 엎드려 신음하며 在馬島客館左車第二牙無故酸痛伏枕呻吟······················89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선소 스님에게 九月九日以登高意示仙巢····················91
동명관에 있을 때… 在東溟館…··········92
선소의 시운을 빌려 次仙巢韻···········94
대마도 객관에 있을 때 뜰에 만발한 국화를 보고서 在馬島館庭菊大發感懷·················97
덕천가강의 큰아들이 선학에 뜻이 있어 법어를 거듭 구하기에 家康長子 有意禪學 求語再勤仍示之······99
대마도 청학동에서 놀며 遊馬島靑鶴洞·······101
대마도에서 한강을 건너는 꿈을 깨어 在馬島夢渡漢江覺而作·······················102
한밤중 배에 앉아 舟中夜坐············104
선소가 여러 왜승과 함께 말하길… 仙巢與數倭僧…·107
한 왜장이 와서 말하길… 有一倭將…········108
본법사에서 제야를 맞아 在本法寺除夜·······110
한 늙은 왜승이 몽두 달마의 그림 족자를 가지고 와 찬을 구하기에 有一老倭僧 持以蒙頭達磨畵幀徵讚書之···111
한밤의 회포 夜懷················113
본법사에서 종소리를 듣고서 在本法寺聞鐘寫懷···115
송원 종장 노승에게 贈松源宗長老僧········117
상야수 죽림원 벽 위에 쓰며 題上野守竹林院壁上二首·119
승태의 시운을 빌려 次承兌韻···········121
왜승 오초가 달마 영정을 가지고 와 찬을 부탁하기에 倭僧悟初 持達磨幀來見 仍以徵讚書之··········123
승태의 시운을 빌려 次承兌韻···········127
원길의 시운을 빌려 次元佶韻···········129
낭고성으로 배를 돌려 평수길이 진을 쳤던 곳을 지나며 回舟浪古城 過平秀吉結陳處············130
정월 12일, 눈이 내리는데… 正月十二日雨雪…···132
유대에게 贈柳岱·················133
매화를 보고서 見梅···············134
꿈에 벗을 보고서 夢見友人············135
일본 원이 교사에게 贈日本圓耳敎師········136
선소와 헤어지며 別仙巢·············139
일본 승려에게 贈日本僧·············141
형상에 머물러 모든 방편에 응하며 留形應方····143
숙로의 시운을 빌려 次宿蘆韻···········144
삼 현인에게 贈參玄人··············146
자통홍제존자 사명당송운대사 석장비명 有明朝鮮國慈通弘濟尊者四溟堂松雲大師石藏碑銘幷序·······149
사명당집 발문··················170
해설······················175
지은이에 대해··················186
옮긴이에 대해··················187
책속으로
●하늘이 벌써 추워지니 흰 눈이 함박처럼 내리네.
붉은 머리와 푸른 옷 오랑캐들 활개치고 다니는데
어육이 된 우리네 백성이여 송장 되어 길에 서로 베개 삼아 있네.
통곡하고 다시 통곡하니
날 저물고 산은 푸르기만 하구나.
아득한 바다는 어드메뇨
나라님께선 하늘 끝에 계신데.
●도는 형상이 없으니 어찌 막히는 바가 있겠는가! 마음은 자취가 없으니 뉘라서 머물거나 가게 하겠는가! 형상과 자취는 없지만 흥이 일어나면 홀로 그 정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 리 밖에 있으면서 서로 보는 것은 선사와 나뿐이니 또한 거기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선사도 역시 이런 눈으로 비추어 보시길 바라노라.
●사해를 떠도는 이 늙은이
하는 일 뜻과는 서로 어긋났네.
한 해도 오늘 밤이면 다하거늘
만 리 길 어느 때 돌아갈꼬.
옷은 오랑캐 땅에서 비에 젖고
시름은 옛 절 사립문에 갇혔구나.
향 사르고 앉아 잠들지 못하니
새벽 눈이 또 부슬부슬 내리네.
●옛 절의 맑은 가을 단풍잎은 하도 많거늘
푸른 절벽에 달 비치니 깃든 까마귀 흩어지네.
안개 걷힌 호수는 비단처럼 곱기만 한데
한밤중의 찬 종소리가 옥 물결로 떨어지네.